일본 알기

일본 민주주의의 悲劇

권영구 2013. 12. 10. 10:27

 

일본 민주주의의 悲劇

 

입력 : 2013.11.30 07:46

  

재일교포 초등학교 앞 혐한시위, '간첩 자식들' 표현까지 등장
日 국회 통과한 '특정비밀보호법', '국익에 反하는 행위' 처벌 강화
감시·관찰 대상이던 在日 한인들 억울하게 '간첩'혐의 받을수도

김미경 히로시마 평화연구소 부교수 사진
김미경 히로시마 평화연구소 부교수
아베 신조씨가 재집권한 작년부터 시작된 일련의 움직임에 재일동포들은 매우 불안하다. 당시 우경화를 우려했던 한국의 목소리를 기우로 치부했던 일본인들조차 이제는 일본 사회의 균형 감각 상실을 걱정할 정도다. 우경화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손쉬운 방법으로, 반대급부를 걱정하지 않고도 행사할 수 있는 민족주의적 '배타성'을 동반한다. 도쿄와 오사카의 한인 밀집 지역에서 주로 일어나는 혐한 시위도 아베씨의 재등장 이후 그 폭력성의 함의와 노골적 언사의 도를 더해만 가고 있다.

지난달 교토지방법원은 재일조선학교 앞에서 혐오 스피치를 계속해온 혐한 단체에 대하여 1200만엔의 벌금형과 200m 내 접근금지 판결을 내렸다. 이 단체는 재일한국인들의 특별영주자격권 박탈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구체적 시위의 대상을 4세대, 5세대에 이르는 초등학생들로 삼아 어린이들의 등교와 수업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상상조차도 하기 싫은 언어 폭력 중에 등장한 표현이 '간첩 자식들'이었다. 역사와 부모의 국적을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은 무고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비열하기 그지없는 인권 침해 행태는 현재 일본 국내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매우 불길한 징조다.

집권 여당인 자민당은 다수의 힘으로 11월 26일 특정비밀보호법을 통과시켰다. 이 입법의 표면적 정당성은 테러 방지를 위한 국가비밀 보호에 있고 관련 영역은 방위, 외교, 간첩 행위 방지와 테러 행위 방지를 아우른다. 2001년에 발생한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전개해온 대테러 전쟁의 수사를 빌리고 있지만 일본 버전은 수없이 제기된 관련 의문점들을 제대로 설명, 정리하지 않은 상태로 중의원의 심의를 통과했다. 이에 헌법으로 보장된 국민의 알 권리가 박탈당하고 언론 보도가 통제되며 비밀결정권이 소수 기관장의 독단적 판단으로 좌지우지되게 됐다. 60년으로 정해진 비밀보호 기간 중 정부가 임의로 관련 자료 등을 파기해도 제삼자가 통제할 기능이 전혀 없으며, 비밀해제 기간이 무기한으로 연장될 수 있는 매우 반(反)시대적·반민주적인 입법이다. '경찰국가' 일본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중 재일 한국인들의 안녕에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일본의 국익에 반하는 소위 간첩 행위 관련 조항과 그에 따른 경찰의 조사권 강화이다. 일본 내 대표적 소수민족인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일본 공안 당국의 감시와 관찰의 대상이 되어 왔다. 1923년 관동대학살, 1950년 한국전 발발 이후 전개된 숙청 작업, 1959년 시작된 북송 작전, 1980년대의 강제 지문날인제도 그리고 현재의 혐한 시위 등은 일관적으로 재일 한국인들이 일본 국내에 존재하는 '반국가' 세력으로 인식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입법으로 반시대적 경찰국가로 재탄생한 일본의 민주주의를 자민당의 장기 집권, 역대 총리들의 짧은 재임 기간, 낮은 투표율 등으로 비판할 수 있겠지만 또 한 가지의 문제는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인권 경시의 멘털리티(mentality)에 있다. 자신들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또는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한다는 행위가 규범에서 벗어난다는 인식조차 없는 인권 불모국에서 제정된 특정비밀보호법이 어떤 형태로 재일동포 사회를 위협할지 우리 모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 무고한 재일 한국인들이 정의 내리기가 매우 애매모호한 '일본의 국익에 반하는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보안 당국에 끌려가 고초를 당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만으로도 소름 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