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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츠·잡스의 차고처럼 … 중국 '처쿠' 창업카페 열풍

권영구 2013. 10. 14. 10:12

 

게이츠·잡스의 차고처럼 … 중국 '처쿠' 창업카페 열풍

[중앙일보] 입력 2013.10.14 01:25 / 수정 2013.10.14 09:16

중국·미국의 도전하는 청년들

중국의 창업카페인 `처쿠카페`의 모습. 커피 한 잔 값으로 창업을 준비할 수 있다. [사진 처쿠카페]
‘처쿠(車庫)’

 중국 베이징 북서쪽 쑤저우제(蘇州街) 인근에 있는 카페 이름이다. 처쿠는 차고의 중국 말이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의 싹을 틔운 차고를 상징한다. 중국은 이런 ‘차고의 꿈’을 대학생이 몰리는 쑤저우제 거리 한가운데로 끌어냈다. 이곳만이 아니다. 베이징에는 창업극장·3W카페 등 ‘창업과 투자’를 컨셉트로 만들어진 카페 10여 곳이 성업 중이다. 상하이·광저우·난징 등의 대학가에도 비슷한 카페가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중국 벤처기업 43만 개, 한국의 16배

 베이징대학교우창업연합회의 양용 비서장은 “창업 카페는 커피 한 잔 값에 이용할 수 있는 작업장”이라며 “창업은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라 길거리 카페에서도 시작할 수 있는, 누구나 도전해 볼 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오후에 찾은 처쿠카페는 예비 창업자로 가득했다. 한쪽 벽에는 ‘투자자 구함’ ‘기술 교류하실 분 전화주세요’처럼 돈과 기술을 찾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100여 개에 이르는 테이블에서 젊은이들은 노트북을 켜놓고 작업을 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토론을 하고 있었다. 처음 만나 명함을 주고받고 자신의 창업 아이템 아이디어에 대해 토의하기도 한다. 카페 간판에는 ‘창업의 길’이라는 문구도 새겨져 있다. 양용 비서장은 “다른 창업 준비자와 노하우를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라며 “주기적으로 창업 아이템에 대한 사업설명회가 열리고, 벤처투자자(VC)가 참여해 투자를 지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처쿠카페가 있는 중관춘(中關村)은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올 들어 7월까지 중관춘에 새로 생긴 기업은 3000개가 넘는다. 중관춘 관리위원회는 “1~7월 창업을 기준으로 역대 최고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거대 제조 공장의 성장은 한풀 꺾였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을 새로운 창업의 싹은 이렇게 쑥쑥 자라고 있다.

 지난해 중국 내 벤처기업 수는 약 43만 개로 한국의 약 16배나 된다. 각종 벤처 관련 펀드가 투자한 금액도 한국의 약 20배인 28조원이다. 최근 10년 새 금액이 25배로 불었다. 중국 10대 투자회사 중 하나인 차이나소프트캐피털(CSC)의 왕광유 회장은 “요즘은 중국 내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꼽히는 서부지역에서도 창업투자를 해 달라는 주문이 넘쳐난다”고 말했다.

 중국의 창업 열기는 새로운 세대의 도전과 정부의 후원이 짝을 이루면서 생겼다. 왕광유 회장은 “1980년대 이후 태어난 ‘바링허우’들이 사회에 자리를 잡으면서 창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들의 창업 본능은 중국판 나스닥인 차이넥스트가 2009년 개장한 후 억만장자가 되는 청년 기업가가 늘면서 자극을 받았다. 중국의 대표적 소셜미디어 회사인 소셜터치의 장루이 최고경영자(CEO)는 “성공한 벤처 기업인이 나오고, 이들이 후배들의 창업 멘토가 되면서 창업 성공의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환경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지만 창업 기업에 자금을 대는 벤처금융은 싱가포르·이스라엘 등을 벤치마킹해 웬만한 자본주의 국가 못지않다. 위안화뿐 아니라 달러로 투자가 가능할 정도로 글로벌화됐다. 지원방식도 주식·채권·전환사채 투자, 은행 대출과 연계한 패키지 투자 등으로 다양하다. 세금 감면 혜택은 기본이고, 주요 지방자치단체와 대학은 법무·회계·인사·마케팅 등에 대해 컨설팅해 주는 창업보육센터를 운영 중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취업난이 심화되자 중국 정부가 청년 창업 지원으로 방향을 바꾼 결과다.

 단순한 지원만이 아니다. 문화도 만들어가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TV에서 창업이 드라마의 단골 주제가 됐고, 창업 관련 정보를 주는 교양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소셜터치의 장루이 CEO는 “드라마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업가정신’을 북돋운 것”이라고 말했다. KOTRA 베이징무역관 변용섭 부장은 “중국인 특유의 장사 기질과 서구식 벤처기법의 도입, 급속도로 발전하는 중국의 IT기술 등도 창업 열기를 고조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다”며 “이처럼 창업 여건이 갖춰지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창업에 도전하는 창업문화가 형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선 MBA 대신 창업학교 선택 늘어

 중국뿐 아니라 미국 등 세계 각국도 창업 경쟁에 나서고 있다. 미국에선 경영대학원(MBA)에 가는 대신 ‘창업 학교’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회사에서 간부로 일하던 챈스 그리핀은 지난달 초 사표를 내고 시카고에 있는 창업훈련 학교인 ‘스타터 스쿨’에 등록했다. 그는 “MBA도 생각했지만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스타터 스쿨이나 뉴욕의 ‘제너럴 어셈블리’ 같은 창업훈련 학교의 과정은 10주에 3900달러부터 9개월에 3만3000달러까지 교육비용이 천차만별이다. 기업가·개발자 등 실무에 정통한 강사의 생생한 경험담으로 교과 과정을 만들고, 창업에 필요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창업훈련 학교가 기간이 짧고, 저렴하다는 장점 때문에 MBA의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이런 열기는 창업이 해고를 당하거나 일자리를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밥슨칼리지 등이 최근 조사한 ‘글로벌 기업가정신 모니터’(GEM)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창업한 사람 중 78%는 ‘돈 벌 기회가 있어 자발적으로 창업’을 결심했다. 미국 전체 기업 가운데 창업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3%를 기록해 1999년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낙관론도 커졌다. ‘사업 기회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답한 창업가는 2011년 조사의 두 배인 4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밥슨칼리지의 도나 캘리 교수는 “미국에 기업가정신이 돌아왔다”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생계형 창업이 늘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 특별취재팀=심재우(영국 런던, 미국 팰로앨토)·구희령·손해용(중국 베이징·상하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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