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역사가 만화 같은가
입력 : 2013.08.1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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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상 정치부 차장
'나치 개헌' 발언으로 공분을 사고 있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웃긴 사람이다. 우리 나이로 73세인 아소는 웃을 때 눈가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2008년 9월 그가 총리에 취임하기 전의 일이다. 그는 방송에서 영어가 자기 특기라며 사회자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과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유학하고 가업(家業)인 아소시멘트 대표로 해외 비즈니스를 했다고 자랑도 했다. 1976년에는 클레이 사격 일본 대표로 몬트리올올림픽에도 출전했다. 그러나 그의 영어는 방송에서 자랑할 수준은 아니었다. 속으로 "참 넉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영어 잘하는 정치인으로 포장된 아소는 총리로 재임 중이던 2009년 2월 결국 영어로 사고를 쳤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그는 일본어 통역을 놔두고 영어로 말을 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미·일(美日) 동맹을 강조하자 영어로 "일본과 미국이 공동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백악관 발언록에는 "알아들을 수 없다"는 기록이 남았다. 망신이었다. 미국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로 정상회담을 한 일본 총리. 일본 국익(國益)을 해쳤지만, 세계인에게 웃음을 준 것은 사실이었다.
아소가 웃음을 준 또 하나의 계기는 한자(漢字)였다. 일본인 중에도 한자를 오독(誤讀)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이 많지만 아소는 공적 자리에서 그것도 반복적으로 실수를 했다. 답습(踏襲·도슈)을 '후슈'라고 읽고, 모교인 가쿠슈인(學習院) 대학에선 '빈번(頻繁·힌판)'을 번잡(繁雜·한자쓰)으로 읽었다. 국어를 모르는 총리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그는 "실수, 착각"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소 때문에 이듬해 한자 검정능력시험 주관사가 응시자 증가로 재미를 봤다.
이렇게 우스꽝스럽고 뻔뻔한 아소는 일주일에 10권 이상 만화를 읽는 만화광이다. 지금도 그의 비서는 새로 발행된 만화 잡지를 그의 차에 비치해둔다. 이동 중에 차에서 읽는 것도 만화다. 미국 유학 때도 어머니가 보내주는 일본 만화 잡지 두 권을 정기 구독했다. 2006년 10월 도쿄 아키하바라(秋葉原)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 후보 유세에서 아소는 이렇게 말했다.
"축구 선수 지단은 어릴 때 축구 만화 '캡틴쓰바사'를 읽고 축구를 시작했다. 이라크에 파견된 자위대가 공격받지 않는 것은 차에 '캡틴쓰바사' 스티커를 붙였기 때문이다." 일본 만화에 대한 그의 자부심까지 뭐라 할 순 없지만 만화 스티커를 붙인 자위대는 공격받지 않는다는 그의 만화 같은 세계관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상식을 뛰어넘는 '만화적 상상력'은 새로운 발명으로 이어져 일자리와 부를 창출하기도 한다. 예술도 만화와 결합해 새 지평을 열기도 한다. 그러나 아소처럼 만화적 세계관으로 역사를 보는 순간, '나치식 개헌' 같은 망언이 튀어나온다. 아소의 영어, 한자 해프닝이야 웃어넘기면 그만이지만 냉엄한 역사의 문제를 만화처럼 우습게 생각하는 그의 세계관은 혐오스럽다. 그는 일본 정계의 이인자다. 앞으로 그가 어떤 우스운 말과 행동을 해도 세계인들은 웃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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