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지식

특허 사냥꾼의 먹잇감이 안되려면

권영구 2011. 11. 14. 10:11

특허 사냥꾼의 먹잇감이 안되려면
특허 풀 이용 등 적극적인 대응 필요


우리나라 조선업체들의 생산력은 세계 최고이지만 원천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기술 특허료로 새나가는 돈이 엄청나다. 일례로 LNG선의 탱크 내벽 설계기술 특허가 없어 프랑스의 한 중소기업에게만 지불하는 특허료가 1조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IT기술이 날로 발전해 감에 따라 특허권의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지는 것은 명약관화다. 기업 경영자들이 특허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안현규 삼성전자 지적재산권 담당 선임연구원이 알려준다.(편집자주)

Q: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기술 특허의 중요성에 관해 심각하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CDMA 원천기술을 사용하는 대가로 미국 반도체회사 퀄컴에 지급하는 로열티가 엄청나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닐까 합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휴대폰을 많이 팔면 팔수록 퀄컴에 지급해야 하는 로열티는 불어나게 돼 전체를 따지면 엄청난 액수가 계산돼 나온 것이지요.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특허에 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데요. 이와 관련된 최근 사례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안현규:
최근 LG전자와 미국 가전회사 월풀 사이에 냉장고 관련 특허 소송이 있었습니다. 다행이 LG전자가 승소했지만 만약 LG전자가 패소했다면 미국으로의 세탁기 수출이 막혔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작년에는 미국의 IV(Intellectual Ventures)사가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상대로 자사 보유 휴대폰 특허 10건에 대한 특허 침해를 이유로 수천억 원대의 연간 특허 사용료를 요구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IV는 미국 MS와 인텔이 주도해 2000년에 세운 업체로, 펀드 규모가 50억 달러(6조 3000억 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특허 전문업체입니다. LG전자 관계자는 "다른 제조 경쟁사와의 특허 분쟁 때는 우리도 상대방 제품에 대해 맞제소를 하는 방식의 대응이 가능하지만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Q: 특허 전문업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안현규:
비싼 해외특허 출원비 등을 이유로 쉽게 기술을 권리화하지 못하는 대학, 연구기관을 위해 특허 출원을 대행해주고, 향후 그 특허를 공동 소유해 수익을 양분하는 방식을 쓰고 있는 것이 특허 전문업체입니다. IV사는 작년 우리나라에서 서울대, 카이스트,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들의 교수들과 '특허 아이디어 협약'을 맺은 바 있습니다. 이는 대학의 연구개발을 촉진시키고, 특허권 획득을 용이하게 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확보된 특허들이 오히려 우리 기업들의 경영 및 생산활동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Q: 기술강국이라는 우리나라도 특허 확보와 관련된 움직임이 활발할 것 같은데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안현규:
하나의 특허가 하나의 제품에 대응하는 시대에서 다수의 특허 기술이 집약된 제품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기업들이 특허의 숫자를 중시하는 양적인 팽창을 추구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인 팽창에의 집착은 핵심 기술 및 원천 기술에 대한 특허는 확보하지 못한 채 특허 출원 및 권리 유지비용의 과다한 지출을 불러오는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했죠. 바로 이러한 점이 위의 IV 사와 같은 ‘특허트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허트롤(Patent Troll)이라 함은 한마디로 특허 사냥꾼입니다. 자사는 어떤 연구개발, 제조와 관련이 없는데 매점한 특허권을 방패로 복수 업체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이나 제품 금지청구를 하는 기업을 말합니다.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LCD, 반도체 산업 등이 모두 특허트롤의 주 공격대상이 되고 있고, 다수의 소송이 실제 진행 중에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 원자력 산업 등 전방위에 걸쳐 특허와 관련된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제 특허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경영은 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외 없이 거의 모든 산업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제는 특허 문제와 관련된 대책은 없는지 적극적으로 고민을 해야 할 시기입니다. 특허 소송에서 어떻게 피해 나갈 수 있을 지 고민하는 방어적 자세에서 벗어나 아예 특허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때입니다.

 

Q: 우리 기업이 특허와 관련돼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안현규:
크게 세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국내 기술에 먼저 눈을 뜨셔야 합니다. 우리 기업들은 국내 대학의 특허 가치를 저평가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IV사의 사례에서와 같이 이제는 우리나라의 연구기관, 대학에서 생산되는 특허들의 가치가 상당합니다. 이를 주목하고 제대로 된 평가를 해야 합니다. 국내 기술들이 제 값을 인정 받을 때 우리 기업도 특허 방패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술이 해외에 싼값에 팔려나가고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 큰 손실을 입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둘째, 새로운 산업에 진출할 때는 특허와 관련된 위기에 대해 미리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산업은 초기 투자 비용이 막대합니다. 많은 돈을 들여 신사업에 진출했는데 특허로 인해 신사업이 발목이 잡히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따라서 미연에 기존 선발업체들이 가진 특허에 대해 철저한 대응책을 세워 놓지 않으면 제품 판매 금지, 막대한 로열티 지급 등 피할 수 없는 위험에 놓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신제품을 출시할 때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관련 특허 획득을 위한 출원을 이루어 나가고, 향후 전개될 기술에 대해서도 입도선매를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특허 풀(pool)을 이용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작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특허트롤로부터 기업 방어를 전문으로 사업을 시작한 RPX를 들 수 있습니다. RPX는 기업의 도산과 재편으로 시장에 흘러 들어온 특허를 조사하여 트롤이 살만한 특허를 선점, 매집합니다. 밑천은 벤처캐피털의 투자자금입니다. 이렇게 취득한 특허로 회원 기업에게 실시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합니다. 공동최고경영책임자(CEO)인 존 암스터는 "올해 1억 달러어치 특허를 매입할 것이다. 소송비용이나 트롤에 지불하는 비용에 비하면 합리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Q: 최근 3D TV시장이 점차 커지면서 3D분야 특허 표준 선점전도 치열합니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낸 특허만 400여 건이라고 하는데요.
안현규:
위와 같이 특허에 관해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나라도 특허를 통해 어떤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1월 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전세계 통신업체들을 대상으로 1조 원대에 이르는 침해금지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국책 연구소, 대학연구소 중 이러한 특허소송은 처음인 만큼 특허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소송의 결과를 떠나 우리나라 연구기관의 이름으로 해외업체들을 상대로 우리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기업 및 경영자들에게 있어 특허에 대한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안현규 변리사(삼성전자 지적재산권 담당 선임연구원)은
연세대학교 공대를 졸업하고 42회 변리사 시험에 합격한 후 삼성전자 지적자산팀에서 특허업무를 시작했다. LCD 분야 특허 출원업무를 경험하고, 현재는 동분야에서 라이센싱 및 소송 대응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