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지식

뒤처리 고민 말고 미리 ‘장치’를 걸어라

권영구 2011. 10. 12. 15:18

뒤처리 고민 말고 미리 ‘장치’를 걸어라
난해한 트리즈 쉽게 배우자 <10편> 예비조치

길어진 회의, 생산성을 높이는 사전 조치는?
2007 MIT sloan 조사에 의하면 미국 직장인들은 매주 평균 6시간 이상 회의를 한다. 회사의 규모가 클수록 또 직책이 높을수록 회의시간이 길어져 과장급 이상은 주 평균 23시간으로 나타났다. 업무시간의 절반 이상을 회의로 채우는 것이다. 회의시간이 이렇게 길어진 데는 사회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회사 조직을 팀 중심으로 바꾼 영향이 크다. 의도야 어떻든 많은 직장인들이 ‘회의’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낮에 회의하고 밤에 야근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회의 방식에도 불신이 깊어 2007년 연합뉴스 조사에 의하면 참석자의 80%가 불만족을 나타냈고 ‘진행, 구성이 비효율적’ ‘결론 없이 끝날 때 많아’ ‘회의시간 너무 길어’ ‘너무 자주해’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업무 생산성을 높이고 직원 만족도를 높이려면 회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미리 준비하는 데 있다. 무턱대고 사람을 모으지 말고 여러 사람이 모여 고민해야 할 사안인지 먼저 따져보자. 정보 공유나 격려사처럼 일방적인 의사 전달이라면 메일이나 게시판으로 대체하면 된다. 그리고 꼭 참석해야 할 사람만 참석시킨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권위적인 집단일수록 윗사람을 참석시키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나중에 ‘사장님께서도 동의한 사안이야’라고 말하면 일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윗사람일수록 가려가며 참석해야 한다. ‘공동책임 무책임’이라고 혹시 발생할 지도 모를 잘못을 모면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사람을 모으는 경우도 있다. 문제가 생기면 ‘회의 때 다 동의한 사안이잖아’라며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런 회의에서는 한 두 사람만 주인공이 돼 떠들 뿐 나머지는 관객이 돼 팔짱 끼고 앉아 딴 생각하고 있다. 관객을 주인공으로 바꾸려면 사전에 회의 자료를 배포하고 내용을 숙지해오도록 해야 한다. 2009년 IGM 조사에 의하면 미리 회의 자료를 배포해도 읽고 오지 않는 사람이 52%나 된다. 읽고 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회의 시작 30분 전까지 자신의 의견을 메일로 제출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제품을 쓸 고객을 위해 편리함을 미리 디자인한다?
이번 회에 소개할 트리즈 해결원리는 10번 ‘사전예비조치’이다. 앞에 예로 들었던 회의 사례처럼 앞으로 전개될 일을 예상해 미리 조치하는 원리다. 이렇게 미리 조치해두면 실제 일이 발생했을 때 시간 낭비를 줄이고 일도 편하게 할 수 있다. 요즈음 과자봉지를 보면 끝부분을 조금 잘라놓았다. 과자를 먹으려면 당연히 봉투를 찢어야 하니 찢기 쉽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 간단한 아이디어가 최근에 시행됐다니 놀랍지 않은가? 더 놀라운 사실은 아직도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풀기 어려운 포장이 많다는 것이다.)

과자봉지처럼 뜯기 힘들어 애를 먹이는 제품이 또 있다. 접착테이프다. 특히 셀로판테이프는 투명해서 끝을 찾기 어렵다. 어렵게 손톱으로 더듬어 겨우 끝을 찾아내도 한 손으로 몸통을 잡고 다른 손으로 끝을 잡은 채 가위나 칼로 잘라내기란 작두 타고 춤추기만큼 어렵다. 그런데 3M에서 테이프 끝에 톱날 모양의 커터를 닮으로써 이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했다. 간단한 아이디어였음에도 대히트를 치면서 스카치테이프란 제품명이 고유명사가 됐다.

과자봉지를 살짝 뜯어낸 것과 셀로판테이프에 커터를 단 것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둘 모두 앞으로 발생할 일을 예상해 그 일을 지원할 조치를 미리 취해놓은 것이다. 이러한 해결원리가 바로 10번 ‘사전예비조치’이다. 이렇게 사전 조치해 놓은 제품은 마트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다. 과일, 야채, 음식 재료만 아니라 쌀까지도 미리 씻어 ‘무세미’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다. 몇 가지 단순한 예를 들었지만 최첨단 제품인 아이폰도 고객의 행동 패턴을 미리 헤아려 제품에 반영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재미’를 활용한 예비조치들
요새 행동경제학이 유행하면서 ‘사전예비조치’에도 재미난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다. 운전자가 제한 속도를 지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마네킹 교통경찰이나 무인카메라 등 위협수단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위협수단을 사용하면 급정거를 하게 돼 더 큰 사고를 야기할 수도 있다. ‘위협’ 대신 ‘재미’를 가미해보자. 일본 군마현에는 차바퀴가 지나가면 음악이 들리는 도로가 있다. 대단한 과학 기술을 활용한 게 아니라 도로 바닥에 홈을 파서 소리가 나게 하는 방식이다. 50km 정도로 감속해야 음악이 제대로 들리기 때문에 이 도로를 지나다 보면 저절로 속도를 늦추게 된다. 음악도로가 설치되고 나서 교통사고가 현저히 줄었을 뿐만 아니라 관광명소로 소문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이번에는 거꾸로 엘리베이터 속도가 느리다고 불평하는 고객들을 상상해보자.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엘리베이터에 거울을 달거나 읽을거리, 볼거리를 제공해 지루하지 않게 하면 된다. 여기까지는 다 아는 문제일 테니 다른 문제를 내겠다.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이용하면 운동도 되고 에너지 소비도 줄일 텐데 잘 이용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다니는 IGM에는 계단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소모되는 칼로리 표시를 해놓았다. 가시적인 효과 때문인지 이 표시를 해놓은 다음부터는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다. 스웨덴에서는 계단을 밟을 때마다 음악소리가 들리는 ‘피아노 계단’을 만들었더니 계단 이용자가 3배나 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운동을 하면서 자기 힘으로 동력을 제공해야만 TV가 켜지는 헬스기구도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고객들은 재미만 있으면 작은 불편은 감수한다. 이런 식으로 ‘재미’ 등 사람들의 심리를 예상해 ‘사전예비조치’를 취할 수 있다.


POME마케팅 기법도 고객선점에 큰 도움
‘사전예비조치’와 비슷한 원리를 활용한 마케팅 기법도 있다. 바로 POME(Point of Market Entry, 시장 진입 시점)마케팅이다. 유아용 분유제조사들은 마케팅 비용의 많은 부분을 산부인과에 투자한다. 첫 수유 제품이 향후 지속적으로 제품 구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제품 구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시기에 마케팅을 집중해 미래 고객을 선점하는 전략을 POME 마케팅이라 한다. P&G에서는 10대 초반 소녀들에게 생리대를 홍보했고 국내 통신사에서도 휴대전화를 처음 구입하는 나이인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POME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다.

다소 먼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자원 고갈 등 환경문제도 우리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할 과제다. 며칠 전 SBS뉴스에서 일본에서  경차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일반 차가 1리터에 12km를 달리는데 비해 경차는 1리터에 30km를 달린다. 엔진 효율을 높이고 공기 저항과 차량 무게를 줄여 연비를 끌어올렸기 때문인데 지난 해 판매된 자동차의 35%가 경차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싼 휘발유 값 때문에 차를 두고 다니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지구 자원이 고갈돼 간다는 이야기도 계속해서 들려온다. 지금 단계에서 꼭 준비해야 할 ‘사전예비조치’가 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자원을 절약할 제품 개발이다.

 

<한호택 IGM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