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지식

플랫폼 비즈니스는 IT기업만 한다?

권영구 2011. 10. 10. 10:23

플랫폼 비즈니스는 IT기업만 한다?
의류업체 리앤펑에서 배우는 ‘플랫폼 리더십’

검색과 광고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 단숨에 인터넷의 절대자로 떠오른 구글. 아이폰 하나로 휴대폰 시장의 맹주들을 한방에 보내버린 애플. 중동 지역의 정치 판도까지 뒤바꿔 놓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바로 요즘 핫하게 뜨고 있는 플랫폼 기반 사업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럴까? 대부분 플랫폼 기업이라 하면 당연히 IT 회사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사실, 플랫폼이란 ‘고객이나 공급업체와 같은 참여자들이 거래를 할 수 있는 마당(場)을 만들어 주고 그것을 통해 수익을 얻는 비즈니스 모델’을 의미한다. 따라서 반드시 IT에 기반한 첨단 기업들만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류 생산 업체인 리앤펑(Li & Fung)이 좋은 예다.

1906년 중국 광조우에서 설립된 홍콩의 대표적인 기업 리앤펑. 이 회사의 주요 생산 및 판매 품목은 의류, 장난감, 액세서리 등으로 2010년 매출은 한화로 약 18조 원이다. 세계시장에서 이 정도 매출을 올리는 기업은 부지기수일터. 하지만 비즈니스위크는 이 회사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회사 29개’ 중 하나로 선정했다. 포브스도 ‘아시아에서 가장 놀랄 만한 50개의 기업’ 중 하나로 꼽았다. 이유가 뭘까?

리앤펑은 매년 20억 벌 이상의 의류를 생산하고 있으면서도 단 하나의 공장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단 한 명의 재봉사도 고용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여개 국에 있는 8,300개의 공급업자 및 그곳에 근무하고 있는 2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바로 플랫폼을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MIT 경영대학원의 쿠수마노와 그의 제자인 가우어는 ‘플랫폼 리더십’이란 책에서 성공적인 플랫폼 주도 기업들이 플랫폼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던 몇 가지 요소들을 밝혀 냈다. 이를 바탕으로 리앤펑의 플랫폼 구축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플랫폼 네트워크를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업계의 관행을 변화시킬 수 있는 차별화된 기술이 있어야 한다. 리앤펑은 거대한 네트워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공급자 관리(SRM; Supplier Relationship Management)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생산 시설 및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아웃소싱 업체들의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관리한다. 그리고 주문이 들어오면 최적의 공급자 조합을 만들어 낸다. 예컨대 미국의 의류회사가 남성용 반바지 30만벌을 주문한다고 치자. 리앤펑은 옷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공장, 직물기계, 염료, 천, 재봉사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공급업체들을 조합하여 한 달 뒤엔 완제품을 미국으로 선적할 수 있다. 단추는 중국, 지퍼는 일본, 실은 파키스탄에서 조달되어 방글라데시에서 꿰매어진다. 고객이 신속한 배달을 원하는 경우 세 개의 공장에서 나누어 작업하기도 한다. 만약 주문이 일주일 후에 들어왔다면 리앤펑은 전세계 8,300개의 공급업자로 구성된 네트워크에서 전혀 다른 최적의 공급자 조합을 만들어 낸다.
 
두 번째 필요한 것은 플랫폼 주도 기업의 사업영역을 명확히 밝히는 것. 이는 공급업체들에게 그들의 사업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으로 플랫폼이 지속되기 위한 조건이 된다. 리앤펑은 자신의 역할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고 보았다. 지휘자의 역할은 단순히 지휘대에서 팔을 젓는 것이 아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을 조율해서 최적의 소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리앤펑은 자신의 역할 역시 단순히 구매자와 판매자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전 세계의 공급업자들을 이끌어 가는 것으로 정의했다. 지휘자도 악기를 다룰 수 있지만 어떤 악기도 연주하지 않는다. 지휘자의 역할은 지휘하는 것이다. 리앤펑도 맘만 먹으면 직접 제품 생산에 뛰어들 수도 있지만 자신의 역할을 공급업체들을 조율하여 전체 네트워크가 성공하게 만드는 것으로 한정지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상생의 파트너십을 강조함으로써 공급업체들에게 사업의 불확실성을 낮춰 주고 리앤펑과의 협력이 원하는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이라는 확신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공급자들이 참여하고 협력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공급업체들을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플랫폼 네트워크에서 이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일감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이를 느슨한 네트워크라 한다. 리앤펑은 이를 위해 ‘30%보다 많게 그러나 70%보다는 많지 않게’라는 ‘30/70’ 규칙을 만들었다. 최대한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공급업체 생산능력의 30% 이상을 활용하되 유연성 보장과 학습을 격려하기 위해 70% 이상은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느슨한 네트워크는 일이 잘 되기를 바라는 유대를 끌어 내면서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유연성을 갖는다. 물질의 세 가지 상태인 기체, 액체, 고체로 비유하자면 느슨한 네트워크의 목표는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70% 이상을 요구하는 고체 상태는 세상의 변화와 고객의 바뀌는 수요를 따라갈 수 있는 유연성이 없다. 반면에 30%에 미치지 못하는 기체 상태는 충분한 생산성을 갖추기에는 응집력이 부족하다. 리앤펑은 30/70 규칙을 활용함으로써 공급업체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플랫폼 네트워크의 규모를 빠르게 키워 나갈 수 있었다.

리앤펑의 사례는 우리 기업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플랫폼에 기반한 대규모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갑’과 ’을’이라는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일부 희생이 따르더라도 먼저 네트워크 참여 기업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들을 지원함으로써 상생을 기반으로 산업 전반을 보다 건강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기 성과주의나 자기 몫 챙기기에 급급하여 결과적으로 자기 발등을 찍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우창 IGM교수>
 

* 위 칼럼은 한국경제 9월30일자에 전문이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