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만이 살길이다.” 허창수 GS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고객들이 끊임없이 변하고, 우리 사회의 룰도 바뀌며, 세계 전체가 발전하고 있다. 창의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으며, 우리의 사업도 이에 걸맞게 업그레이드 되어야 하고, 그러자면 우리 자신부터 바꿔야 한다. 진정성을 가지고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실질적 결과는 없으며, 신념을 가지고 나부터 먼저 행동하자”고 말한다. 기업이 성공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미래의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혁신이란 무엇일까?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슘페터(Schumpeter, Joseph Alois)에 따르면 혁신(innovation)이란 생산의 확대를 위해 토지나 노동 등 생산요소의 편성을 변화 시키거나, 새로운 생산요소를 도입하는 기업가의 행위를 말한다. 흔히 기술혁신의 의미로 한정하기 쉽지만 혁신은 신시장이나 신제품의 개발, 신자원의 획득, 생산조직의 개선 또는 신제도의 도입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혁신이라는 개념이 처음 실무에 도입 되었을 때 흔히 범한 실수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혁신의 전부라 믿었던 것이다. 아이디어를 구하기 어려운 것이 문제일 뿐, 반짝이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혁신가들은 수많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손에 쥔 채 실패의 쓴 맛을 봐야 했다. 혁신의 완성은 ‘아이디어’와 ‘실행’이라는 두 요소가 성공적으로 결합되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임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완벽한 혁신(Perfect Innovation)”이라 번역된 이 책의 원제인 “혁신의 또 다른 면(The other side of innovation)”은 그 동안 소홀히 여겨졌던 혁신의 한 축인 ‘실행(implementation)’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혁신의 실행은 혁신 프로젝트를 위한 특별한 형태의 팀과 그들의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다. 저자는 이러한 팀을 혁신 조직 혹은 혁신 프로젝트팀이라 명하고, 이 조직을 구성하는 방법(혁신 조직, 올바르게 구축하라)과 운영하는 방법(혁신, 철저한 분석이 핵심이다)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혁신 조직, 올바르게 구축하라
혁신 프로젝트의 종류가 다양하듯 혁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의 모양도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혁신 프로젝트팀은 사내에서 혁신 업무를 전담하는 전담팀과 기존 조직의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혁신프로젝트의 실행에 직접 관여하는 공유직원으로 구성된다. 이 두 그룹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가에 따라 혁신 프로젝트팀이 진행하는 혁신의 성공과 실패의 운명이 결정 된다.
Step1. 전담팀 구성이 필요한 업무인지를 판단하라
혁신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첫 단계는 전담팀이 필요한 업무인지, 기존 직원들이 업무와 병행할 수 있는지 즉, 공유직원을 통해 처리가 가능한 업무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기존 조직의 역량을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 ‘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기존의 조직에게 새로운 혁신 업무를 맡기게 되면, 전문 분야와 다른 업무를 맡게 된 기존 조직은 큰 혼란을 겪게 되고 프로젝트는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가전제품 제조사인 일렉트로룩스(Electrolux)는 2002년 제품 개발 방향을 대대적으로 전환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기존에 생산하던 중간 가격대의 제품은 최저가 혹은 최고가 시장으로 양분되어가고 있는 가전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따라서 수 십 년간 중급제품을 효율적으로 생산해 오던 제품 개발팀을 대신해 고급 제품을 개발 할 새로운 조직이 필요해졌다. CEO 한스 스트라버그는 우선 새로운 인력으로 ‘고객통찰팀’을 구성하고, 새로운 타깃 고객의 요구사항을 정밀하게 진단해서 고급형 제품 시장에 가능성 있는 영역을 찾아냈다. 고급형 제품을 선호하는 새로운 고객층은 단순한 가전 기능뿐 아니라 인테리어 기능을 중시한다는 것을 파악한 후 ‘산업디자인’ 영역에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새로운 팀의 구성과 기업 내 권한의 대대적 이동을 통해 일렉트로룩스는 2007년에 이르러 신제품 출시 빈도를 두 배로 늘렸고, 성장률을 두 자릿수로 회복할 수 있었다. 즉, 기존의 조직에서 다뤄보지 않았던 분야에 도전하기 위해 일렉트로룩스는 새로운 인력을 바탕으로 혁신조직을 구성하고, 새로운 방식과 시각으로 시장의 변화에 대응해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Step2. 조직의 관성을 뛰어넘는 전담팀을 꾸려라
혁신 프로젝트팀이 구성되었다면 이 팀은 기존 조직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대다수의 관리자들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두렵거나, 새로운 작업 환경에 익숙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전담팀 구성에 머뭇거리기 쉽다. 또 새로운 전담팀을 꾸려 놓고도 기존 조직에서 사용하던 작업 지침서를 그대로 따르거나, 기존의 인력을 재배치하는 수준의 인사를 통해 비슷한 인적 자원을 활용하는 수준에서 머물기도 한다. 하지만 ‘조직의 관성’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진정한 혁신을 이루는 팀이 될 수 있다.
훌륭한 전담팀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기본 원칙은 간단하며 다음과 같다. 첫째, 필요한 기술을 분명히 파악한다. 둘째, 가능한 한 최고의 인재를 고용한다. 셋째, 전담팀의 책임과 일치하는 새로운 기준을 갖춘 조직 모형을 만든다.
‘월스트리트 저널’을 발행하는 다우존스(2007년 뉴스 코퍼레이션이 인수)는 종이 신문의 몰락을 예상한 많은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새로운 유통 마케팅을 시도해 성공을 거두었다. 기존에 다우존스는 신문광고와 콜센터 운영과 같은 전통방식을 통한 신문 구독자 모집과 온라인 마케팅을 통한 온라인 콘텐츠 구독자 모집을 구분했었다. 그러나 신문 업계 관계자들은 대부분의 독자가 속보는 인터넷을 통해, 분석기사는 종이 신문을 통해서 접하는 혼합 방식으로 뉴스를 보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우존스는 2006년 종이신문과 인터넷신문을 동시에 구독 할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을 선보여 독자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러한 성공적 혁신을 이끈 전담팀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었다. 우선 기존에 취약했던 온라인 마케팅과 온라인 분석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경쟁관계였던 인터넷 출판업체의 전문가들을 과감히 영입했다. 또한 신문과 온라인을 아우르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만큼 전 직무를 새롭게 정의하는 직무기술서를 다시 작성했다. 역사가 길었던 만큼 종이신문에 쏠려있던 권한을 온라인 영역으로 분산하기 위해 팀의 리더자리를 온라인 마케팅 전문가에게 맡기고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도 새롭게 만들었다.
Step3. 전담팀과 공유직원이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관리하라
혁신 프로젝트의 조직이 전담팀과 공유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이 조직의 성공은 두 그룹이 얼마나 잘 협력 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두 그룹은 근본적으로 매우 다른 속성을 갖고 있어서 협력이 쉽지 않다. 공유직원들은 기존의 조직에서 기업의 성과를 책임져왔으며, 익숙한 환경에서 효율성을 중시하며 일해왔다. 반면 전담팀은 혁신 프로젝트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업무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분배하고 두 그룹의 상호이해와 협력을 위해서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프로젝트 초기엔 전담팀의 리더는 권한이 매우 적다. 이때에는 프로젝트 리더의 감독을 맡은 임원의 일상적 관심이 중요하다. 전담팀의 리더는 임원에게 프로젝트가 성공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시켜 필요한 자원을 원활히 지원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담당 임원은 기존의 조직에게 혁신 프로젝트는 기존 업무에 방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회사 전체에 이익을 주는 일임을 인식시켜 공유직원들이 기존업무와 혁신 프로젝트 업무 사이에서 느끼는 불필요한 갈등을 줄여주어야 한다. 또한 혁신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전담팀이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여겨지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두 그룹의 차이는 전담팀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기존 조직의 목적과는 다른 특이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두 그룹의 충돌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혁신, 철저한 분석이 핵심이다
Step1. 직감이 아닌 과학적 방법을 통해 학습하라
경험을 통한 학습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하기 쉽지만 경영자들은 학습의 과정보다는 결과에만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러한 학습 과정은 이익은커녕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과정이고, 성공적인 결과야 말로 기업의 최종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신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분야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경험을 통한 학습은 불가피하다. 기업은 이러한 경험을 효율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통해 더 나은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2004년 미국 소니 코퍼레이션은 전자제품 사업부의 부실한 고객서비스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고객이 문의전화를 할 때 한번에 해당 사안의 전문가에게 바로 연결이 되지 못하고 여러 담당자들을 거쳐야 하는 과정에서 고객은 인내심을 잃고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증가했다. 소니 코퍼레이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화 시스템의 도입을 결정하고 과학적 실험을 진행했다. 가장 적절하고 효율적인 질문 항목을 찾기 위해 고객이 컴퓨터의 자동 질문에 응대하다가 귀찮아 하는 순간을 발견하고, 답변에 어려움을 겪는 문제들을 찾아냈다. 이후에도 실험 방식을 다양화하면서 고객과 담당자의 연결이 원활히 이루어졌는지, 그로 인해 고객의 문제가 잘 해결 되었는지 등을 꾸준히 검토했다. 이러한 과학적 실험을 통한 학습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니 코퍼레이션은 급격한 서비스의 향상과 고객의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경영자는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집착하지 말고 학습 과정을 인내하고 더 나아가 효과적인 학습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또한 혁신 프로젝트 리더는 학습의 성과가 프로젝트의 발전에 효율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Step2. 가설을 무너뜨려라
많은 무사고 운전자들은 수십년 동안 정기적으로 내는 비싼 자동차 보험료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보험회사인 올스테이트(Allstate)는 이러한 불만을 기회로 인식했다. 바로 무사고 운전자에게는 현금으로 보상해줄 뿐만 아니라 혹시 사고가 나더라도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는 YCA(Your Choice Auto)보험 상품을 개발한 것이다. YCA를 시장에 내놓기에 앞서 올스테이트 영업 사원들은 가장 효과적인 상품 판매방법에 대해 토론을 했다. 모든 옵션을 설명하고 고객에게 선택을 맡길 것인지, 고객의 질문에 맞는 상품 만 설명할 것인지, 비싼 상품순으로 설명할 것인지, 가격이 낮은 상품에서 시작해 높은 상품순으로 설명할 것인지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올스테이트는 보험상품의 판매 방식을 결정하기 위해 과학적인 실험을 했다. 각각의 사원들이 다양한 접근법을 시도할 수 있게 하고, 그 결과를 수집했다.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다. 토론 과정에서 가장 낮은 지지를 받았던 방법인 ‘가격이 높은 제품에서 설명을 시작해 판매될 때까지 점차 낮은 가격의 제품을 소개하는 방식’이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올스테이트는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무엇이 가장 효과적인가를 찾기 위한 노력을 실험을 통해 계속한 결과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어 판매율을 높이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거나 기존 조직의 평가방식 등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혁신 활동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
Step3. 정확하게 평가하라
혁신 프로젝트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기존의 조직들은 전년도 성과를 바탕으로 비교적 실현 가능하고 분명한 목표를 갖고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혁신 프로젝트팀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에 대해 답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다. 프로젝트의 실행 결과가 예측에 미치지 못했을 때 결과가 저조한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예측을 너무 높게 한 것인지도 불분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가 아닌 행동이나 학습 과정에 책임을 묻고 평가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의 작업 과정 및 평가 지표를 엄밀히 분석해야 한다. 신제품 판매 증가율은 영업사원만의 성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판매 보고서 작성은 영업사원의 행동으로서 평가할 수 있다. 학습 과정에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계획 수립 과정과 혁신 실험의 운영 등 각 과정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혁신 프로젝트 진행의 어떤 부분에서 성과가 발생하고 문제가 생겼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혁신’은 아무도 가지 않은 미지의 곳을 향해 나가는 것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방향을 설정하고 나면, 목표를 향해 길을 닦아야 한다. 프로젝트의 크기와 중요도에 따라 그 길은 넓을 수도 있고 좁을 수도 있으며,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기도 하고 예상보다 짧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길의 모양은 각기 다르지만 길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원칙을 몇 가지 알아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이 책에 소개된 성공한 혁신사례 기업을 뛰어넘는 멋진 “퍼펙트 이노베이션”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