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같은 이야기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 듣는다

권영구 2011. 4. 5. 11:20

□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 듣는다

 

우리가 흔히 ‘쑥맥’이라 부르는, ‘숙맥불변’이라는 말이 있다. 숙맥불변(菽麥不辨)이란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함을 가리킨다. 아무리 어수룩하다 해도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심하다 싶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콩과 팥은 콩과 보리보다 구별이 더 어려울 수 있다. 모양이나 빛깔이 어찌보면 비슷하기 때문이다.
세월이 이렇게 가다가는 메주가 무엇인 줄도 모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콩으로 쑤는지, 팥으로 쑤는지, 공장에서 물건 찍듯 만드는 것인지, 만드는 과정은 고사하고 메주의 소용조차 알지 못할 때가 오지 않을까 모르겠다. 핵무기의 위협 만이 아니라 이런 것 또한 우리 삶을 무너뜨리는 큰 위기일 텐데.
팥으로 팥죽을 쑬 수 있을지는 몰라도, 메주를 쑬 수는 없다. 그런데도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있으니 남의 말을 아무 의심 없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는 사람을 세상에서는 어리석다 하지만, 어쩌면 신앙이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 것일지도 모른다.
말이란 말의 내용보다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분명 팥으로 메주를 쑨다는 말은 우리 머리로는,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 말을 하는 분이 주님이라면 다르다. 팥으로 메주를 쑤건, 콩으로 팥죽을 쑤건 의심 없이 따르는 것, 그것이 주님이 제자들에게 기대하셨던 믿음, 바보스러움이었을 것이다. ⓒ한희철 목사

 

□ 말부터 바꿔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돈'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참 열심히 사는 친구인데 왜 그리 맨날 돈에 쪼들려 오토바이도 아닌데 돈돈돈돈돈돈돈 거리며 사는지 모르겠다는 푸념.
"그렇게 돈돈거리지 말고 차라리 돼지를 키워라. 그러면 꿀꿀거릴꺼야." 하나도 안 웃기는 썰렁개그도 해 가면서 나름 대통령이 정치를 잘 못해서 라느니...일본에 지진이 나서라느니...오존층에 빵꾸가 나서라느니...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다보니 남들 다 하는거 하지 못해 손해라느니... 한 참 말도 안되는 이야기 하다가 더 할 말이 없을 때 쯤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
돈 없어. 정말 더러워서 못해 먹겠네. 짜증나. 남들은 돈도 잘 버는데... 돈 때문에 너무 힘들어. 난 왜 이 모양 이 꼴로 사니? 평생 빚에서 못 벗어날거야. 희망이 없어.............. 워뗘?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들어? 지금 내가 너와 얘기를 하면서 그런 말을 들었거든."
"머시여? 내... 내가 그런 말을 해불었어?"
"그랬당께. 말은 '에너지'야! 전기가 있어야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이 '말'은 돈이 들어오게도 하고 나가게도 하는 전기같은 에너지야. 계속 돈 나가는 소리만 해대니 어떻게 돈이 들어올 수 있겠니? 안 그려?"
"오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쓰까?"
"돈은 돌고 도는 것이어서 돈이 필요할 때는 반드시 들어와. 돈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되게 되어 있어. 어떻게든 될 거야. 난 돈복 하나는 있어. 이 정도면 충분해. 돈은 넉넉해. 여유가 있어. ... 이렇게 말부터 바꿔봐. 훨씬 여유가 생길테니 말이야. 그리고 제수씨한테 '당신이 돈을 버니 우리 가정이 확 살아나는 것 같아. 고마워' 하고 말해 줘 알았지?"
뭐, 말을 하면서 제 가슴도 뜨끔했습니다. 저도 아직 아내에게 그런 말을 못 해줬는디... ⓒ최용우 2011.4.3

 

□ 너무 어려운 이야기

아무리 설교를 해도 변화되지 않는 성도들에게 마음이 몹시 상한 저의 친구 목사님이 '내가 설교를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성도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했습니다.
"무슨 설교를 했는데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서로 사랑하면 삶이 변화된다고 설교를 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에요?"
"예수님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지요. 자신의 생명을 주신 사랑이지요"
"맞아요. 예수님의 사랑은 정말 완전한 사랑이지요. 로렌츠라는 사람이 인간의 의식 수준을 몇 단계로 나누어 놓고 그것을 '끌개이론'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0->수치심. 죄의식. 무기력. 슬픔.  100->두려움, 욕망, 분노, 자존심 200->용기, 중용 300->자발성, 포용 400->이성  500->사랑, 기쁨 600->평화 700 ~1000->깨달음)
끌개이론대로 따져보면 예수님의 의식 수준 수치는 1000. 간디, 데레사 수녀는 700. 아인슈타인, 뉴턴, 프로이드는 499라고 합니다.
자, 그럼 우리 목사님의 의식 수준 수치는 몇 정도 나올까요? 우리 성도들의 의식 수준 수치는 얼마나 될까요? 200도 안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예수님(1000)의 사랑(500)을 겨우 의식수준 200이 될까말까 한 사람들에게 요구하니 그게 됩니까? 될 수가 없지요.^^" 
간디나 데레사 수녀의 수치를 가진 '한 사람'이 일으킨 변화는 한 시대를 뒤바꿀 정도의 커다란 영향력이었습니다. 만약 성도들의 의식 수준 수치를 300만 넘어가게 해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오 하나님, 대한민국 기독교회에 '간디'같은 사람 한 명만 주십시오!   
ⓒ최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