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헛것에 속지 마세요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어깨 너머로 들어보니 재미있습니다.
"우리 학교는 텔레비전에 나왔다. 부럽지?"
"나도 쩌네 텔레비전에 나왔었어. 내 친구를 카메라로 찍는데 옆에 있다가 살짝 나왔어. 많이 찍었는데 한 번밖에 안 나오더라."
그런데 우리 딸 하는 말 "우리 아빠는 맨날 신문에 나와!"
오잉? 내가 맨 날 신문에 나온다고?
내가 신문에 나온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기사나 글이 나왔겠지. 텔레비전에 나온 것은 내가 아니라 '나'를 찍어간 어떤 기록이 기계를 통해 재생된 영상이나 그림자 같은 것이겠지.
그렇지요? 한번만 더 생각해보면, 여기에 있는 '나'는 텔레비전에 나갈 수도 없고, 신문에 나올 수도 없습니다. 이게 다 실체가 없는 헛것이에요. 이미지이고 관념입니다. 진짜 '나'는 그 안에 없습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나가 아닌 다른 것입니다.
어떤 분은 요단강 물을 병에 담아와 그것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막 자랑을 합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쨋다는 것인가요? 요단강 물과 한강 물은 서로 다른 성분인가요? 아니에요. 물은 어디에 있든 다 똑같은 물입니다.
큰 딸 좋은이는 '지렁이'라는 말만 들어도 실제 지렁이가 눈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비명 소리를 지르며 싫다고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어릴 때 지렁이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머릿속에 영상으로 재생되어서 그러는 것이겠지요? 물론 고등학생이 되어 '지렁이'라는 단어는 무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지금은 울지는 않습니다.
그래요. 한번만 더 생각해 보면 실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어떤 '이미지'일 뿐 '실체는 아니에요. 헛것에 불과합니다. 지금 무엇 때문에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고,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계십니까? 그거 사실은 진짜가 아닙니다. ⓒ최용우
□ 도랑물이 소리 내지 깊은 호수가 소리 낼까
도랑, 오랜만에 듣는 정겨운 말이다. 매우 좁고 작은 개울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주변에서 어느새 사라진 것 중에는 도랑이 있다. 실핏줄처럼 우리의 삶 한복판을 흘렀던 것이 도랑이었다.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는 말을 요즘의 아이들이 들어보았을까. 도랑에 가재가 산다는 것이나, 도랑을 치면 가재를 덤으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요즘의 아이들이 얼마나 알까.
도랑이 죄 시멘트로 덮이고, 그나마 억지로 흘려보내는 물이 흘러갈 뿐이니, 참으로 우리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되살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된다.
도랑물은 도랑물 소리를 낸다. 듣기에 따라 다를 것이다. 정겹게 듣는 이들에겐 노래처럼 들릴 것이고, 가볍게 듣는 이들에겐 소음처럼 들릴 것이다.
도랑물이 도랑물 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다고 잊으면 안 되는 한 가지 것은 깊은 호수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말없이 하늘을 품는 호수가 있다는 것을 잊고 모두가 나 같은 줄 안고 목청을 높인다면, 그건 아닌 것이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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