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규의 사랑칼럼

변화의 주인공이 되라

권영구 2008. 7. 12. 07:57

변화의 주인공이 되라


사람이 사람을 볼 때 가장 감격스런 장면이 무엇일까? 한 사람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 장면! 아마 그 장면에 가장 감격스러운 장면일 것이다. 그 변화가 큰 변화가 아니어도 좋다. 조그마한 변화일지라도 사람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메마른 시대에 시원한 생수와 같이 느껴진다.

내 삶에 있어서도 변화된 부분들을 생각하면 어려운 세상에서도 다시 한 번 삶의 용기가 새롭게 솟구치는 것 같다. 그 변화 중의 하나로 항상 내게 ‘가능성의 열린 문’에 대한 시야를 열어주었던 변화는 대중 앞에 서면 말을 더듬었던 내가 대중 앞에서 설교하는 목사로 변화된 것이다.

24살 이전까지 나는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대단히 두려워했다. 부모님의 말씀에 의하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노래를 잘해서 사람들이 모여 있기만 하면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고, 특히 ‘빨간마후라’를 잘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초등학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급속히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아이로 변화되었다. 어렴풋이 생각하건대 무엇인가 환경적 요인이 내 삶을 급격히 위축시켰던 것 같다. 그 환경적 위축요인은 아마 학교생활에서 비롯된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특히 초등학교 2학년 때에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은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게 기억난다.

서울 C 초등학교 2학년 때, 학생들의 특별활동 부서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동극부(童劇部)를 자원해서 들어갔다. 그때 동극부가 무슨 활동을 하는지 잘 모르고 그저 명칭이 신기해서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남들 앞에서 어린이 연극을 하는 부서였다. 남 앞에서 연극을 하는 것이 선천적으로 맞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그런 부서에 들어갔으니 도저히 특별활동에 재미를 붙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연극 연습을 하다가 몇 번이나 창피를 당하면서 특별활동 시간만 되면 자꾸 그 시간을 피하고 싶었다.

결국 그 시간에 학교의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는 분수대 주위를 배회하거나 건물 뒤편에 쪼그려 앉아 있다가 수업시간에 다시 들어가서 선생님한테 야단맞은 적도 많았다. 어린 나이에 남들이 다 수업에 들어간 시간에 건물 뒤편에 쪼그려 앉아 있어야 하는 심정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지금도 그때의 상실감과 고독감이 가슴에 저며 올 지경인데, 그 당시 선생님은 저의 그런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았다. 그 이후부터 나는 더욱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었다.

특히 대중 앞에 서기만 하면 가장 위축을 느끼는 것은 말하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대화를 할 때에는 스스럼없이 얘기를 잘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 서서 사람들의 눈동자를 쳐다보기만 하면 한마디의 말도 조리 있게 하지 못했다. 사람들 앞에 서서 횡설수설하다가 자존감에 몇 번 상처를 입고 나서는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고, 언제부터인가 대중 앞에 서면 지나치게 떨고 말을 더듬는 현상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 나는 대중 앞에 서면 말을 조리 있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거의 숙명으로 여기고 자라나게 되었고, 자연히 대중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 기회는 무조건 사양하고 회피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선천적인 말더듬이라기보다는 무조건 말하는 자리를 회피하기만 해서 그렇게 된 후천적인 말더듬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내게 1985년 1월 소박한 일자리가 하나 주어졌다. 1984년부터 교회생활을 열심히 한 덕분에 교회에서 대학부 선생을 맡게 된 것이다. 선생이라고 거창한 명칭을 붙였지만 사실상 후배 대학생 몇 명을 앞에 두고 성경을 가르치는 자리였다. 그처럼 아주 소박한 자리였지만 그 공부 시간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그 자리를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했다. 토요일 저녁에 있는 한 시간의 성경공부 인도를 위해 거의 일주일 내내 가슴앓이를 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조그만 자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며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과정 중에 나의 말더듬이 증상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말 더듬는 것을 거의 숙명으로 여겼던 내게 그것은 놀라운 기적이었고, 내 사고 체계에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목사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도 그 자리에서 발견한 자신에 대한 가능성과 감격 때문이었다. 결국 그 소박한 자리가 내 일생에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일으킨 놀라운 자리가 되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힘든 가슴앓이는 꼭 필요한 가슴앓이였다.

말더듬이가 목사가 된 것! 사람들은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내게 이 사실은 말기 암 환자의 암이 극적으로 치유된 것과 같은 기적으로 항상 느껴진다. 나는 그 기적을 생각하면서 인간에게는 무한한 변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항상 잊지 않고 있다. 그렇다. 우리의 약점 극복 노력에 따라 우리의 가장 부족한 약점은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적 삶을 이루어 가는 가장 효율적인 방편이 될 수 있다. 변화를 믿어 보라. 그리고 변화의 주인공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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