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필자는 MBTI 성격진단 검사가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특정 MBTI를 혐오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다만, 이미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MBTI 광풍’을 지켜보면서, 이 검사가 정말 인간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유효한지, 그리고 혹시 너무 맹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2020년 전후로 한국에는 ‘MBTI 광풍’이 거세게 불어 닥쳤다. 외향/내향, 직관/감각, 사고/감정, 판단/인식이라는 네 가지 축으로 사람을 분류해 총 16가지 유형을 만들어내는 MBTI 검사는, 이미 일상 대화의 필수 아이스브레이킹 주제로 자리 잡았다.
가령, 잘 이해되지 않던 사람의 MBTI 결과를 보며 “아, 그래서 이랬구나!” 하고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가 하면, 평소 잘 맞던 친구와 내 MBTI를 비교하며 “역시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필자 역시 3번 정도 테스트를 해 본 뒤, 그중 두 번 같은 결과가 나왔기에 그 유형을 내 MBTI라고 생각하며 말하고 다녔다. 솔직히 말하면, 나 자신도 ‘내 MBTI야말로 나와 찰떡’이라고 느낀 적이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이 MBTI 검사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사실 MBTI는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이 1921년에 발표한 성격 유형 이론을 토대로, 캐서린 브릭스(C. Briggs)와 이사벨 마이어스(I. Myers)가 1940년대에 이를 실용화해 개발한 심리 검사다.
자기 이해와 대인관계 개선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100년도 넘은 이론으로 현대인을 분석한다는 점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더욱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처럼, 인간은 매우 복합적인 존재다. 이런 복잡성을 고작 16가지 유형에 욱여넣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물론, 대표적인 성격 유형을 뽑아 분류한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필자도 어느 정도는 MBTI 검사를 신뢰하는 편이고, 실제로 누구를 만나든 MBTI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어색함을 풀어 주는 ‘순기능’을 하기도 한다. “MBTI가 없던 시절엔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 풀었나?” 할 정도로 일상에 깊이 스며들었다는 것만 보아도, 이 검사가 갖는 재미와 유용성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절대적 진리’처럼 여기는 태도다. 소위 ‘MBTI 박사’를 자처하며 상대방의 유형만 듣고 “당신은 이럴 것이다”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 것, “I라고요? 그럼 내성적이시겠네요.”, “제가 T라서 직설적으로 말하거든요.” 같은 식의 대화가 대표적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처음 본 상대의 MBTI 결과를 듣고, 머릿속에서 이미 “이 사람은 이렇고 저렇고…”라며 모든 걸 분석 완료한 듯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필자도 직장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평소 사람이 좋고 친절했던 'S 선배'가, 팬데믹 무렵 MBTI 검사에서 “OOTO” 유형이 나왔다고 했다. 그때부터 'S선배'는 마치 본인이 ‘T’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가끔 퉁명스럽게 쏘아붙이고 예의 없이 말한 뒤 곧잘 “아, 내가 T라서 그래”라고 변명하곤 했다. 예전에는 그런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던 분이어서,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당혹스러웠다. 평소의 호감도마저 사라질 지경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나는 T니까 직설적이어도 괜찮다’라는 식의 자기합리화가 문제였다고 느껴진다.
이렇듯 MBTI 유형을 자신을 정당화하는 ‘면허증’처럼 사용하는 사례도 종종 보인다. 순기능이 강조되던 MBTI가,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쉽게 재단하고 변명 거리로 삼게 만드는 역기능을 낳고 있는 셈이다.
더 심각한 것은, 회사 채용 과정에서 MBTI를 활용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동일한 역량과 면접 점수를 갖춘 지원자들 사이에서 “이 MBTI는 합격, 저 MBTI는 불합격”이 갈린다면, 그야말로 억울한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또한 결혼정보회사에서 “어떤 MBTI를 선호하느냐”를 묻거나, 언론에서 ‘가장 인기 있는 MBTI vs. 인기 없는 MBTI’를 서열화하기도 한다. 나아가 ‘MBTI 성형(?)’이라는 말까지 등장하니, 이 광풍이 얼마나 과열되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결국 MBTI는 어느 정도 사람을 이해하는 ‘참고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선을 넘어서, 특정 유형을 맹신하거나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어릴 적 혈액형으로 “A형은 소심, B형은 나쁜”이라고 단정 지었던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T라서 직설적이라 그래”라고 말하기 전에, 혹시 그저 무례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먼저 돌아보면 어떨까. 상대가 T든 F든, 결국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고 예의를 갖추는 게 기본이다.
무엇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MBTI 유형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아닐까. 그 사람이 좋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좋았는지, 상대에게 어떤 부분에서 배려를 느꼈는지, 그 사람이 싫다면 무엇이 그를 싫게 만들었는지... 그런 것들을 돌아보는 태도가야말로 제대로 된 성숙한 ‘인간 이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by.로건 현 https://brunch.co.kr/@loganhyun/6
(위 글은 작가님께서 행복한가에 기부해주신 소중한 글입니다. 행복한가 이 외의 공간에 무단 복제 및 도용하는 행위를 금지하며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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