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토리
마흔 쯤 살아보니 보이는 것들
2022.08.04
-나의 해방일지-
시간이 흘러 마흔 쯤 되고 보니 어느 순간 구두보다는 운동화를 자주 신게 되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얼굴에 생기는 기미와 주름살을 막을 수는 없었다. 주름도 주름이지만 둘째를 낳고 기미가 부쩍 늘었다. 그 무렵 나도 모르게 화장이 점점 더 두터워지기 시작했는지 남편은 맨 얼굴이 훨씬 예쁘다는 말로 화장이 두텁다는 말을 대신했다. 그게 말이 되냐고 하자 ‘기미를 가리려 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게 예쁘다’라고 했다.
사람들은 왜 젊어 보이고 싶어 할까. 노화의 자연스러운 증상인 주름과 기미를 없애는 것이 더 예뻐지는 걸까? 40대, 50대가 되어도 주름 하나 없이 백옥 같은 피부가 예쁜 피부일까? 나이 듦을 거스르는 것이 아름다운 것일까?
어떤 사진작가와 유명 여배우의 일화가 있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여배우가 실력은 있지만 아직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사진작가가 촬영을 한 후 나눈 대화 내용이다.
사진작가 : 선생님 오늘 찍은 사진에서 뭔가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이 있나요?
여배우 : 오늘 찍은 사진을 보니 이제 제 얼굴에도 주름이 가득해 보이네요.
사진작가 :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진에서 보이는 주름살을 깨끗하게 수정하겠습니다.
그러자 여배우가 미소를 지으면서 작가에게 말했다.
여배우 : 아니요 수정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제가 아끼는 지금의 얼굴을 만드는데 평생이 걸렸거든요.
20대, 30대를 지나 마흔쯤이 되고 보니 피부, 옷차림에 따른 미의 기준에 대한 생각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최강 동안이라고 매체에 소개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관리에 철저한 그 사람들의 노력은 정말 대단해 보이지만, 어딘가 어색했다. 놀라울 정도로 젊어 보이는 외모보다도 자연스러움을 거스른 듯한 흔적이 더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내가 구두를 벗어던진 건 아이들이 생기고 난 뒤에는 구두가 아주 많이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 등원 가방에 이불가방, 내 출근 가방까지 들고 어떨 때는 아이까지 손에 들고 움직여야 하는 일상에서 굽 있는 구두는 두 손뿐 아니라 두발까지 묶어놓는 격이었다. 그 와중에도 가끔 쫙 빼입은 치마 정장에 구두를 신고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정석 같은 옷을 입은 여자를 보면 예쁘다, 부럽다, 나도 입고 싶다 라는 마음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굽 있는 구두보다는 운동화를 신고 그 안에서 풍겨 나오는 그 사람의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더 좋다. 굳이 기미를 가리려는 두터운 화장보다는 기미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화장이 더 예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뭐든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인위적인 행동은 어딘가 어색하기 마련이었다.
나이 들수록 그 사람의 성격은 얼굴에 드러나고 생활태도는 체형에 드러난다고 한다. 웃는 일보다 인상 쓰는 일이 많았던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마에 주름이 생기고 입꼬리가 처지게 된다. 다리를 꼬고 앉거나 허리를 곧게 세우지 않았던 생활태도는 그 사람 체형에 굽은 허리로, 틀어진 골반으로 화석처럼 굳어져 버리고 만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노화와 더불어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또한 몸에 새겨지는 것이다.
20대에 맞는 예쁜 얼굴이 있고, 30대에 더 어울리는 얼굴이 있다. 40대에 주름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50대, 60대가 되면 피부는 눈에 띄게 수분과 탄력이 없어질 것이다. 지금 내 나이에 맞는 예쁜 외모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주름 한 줄 없는 꿀광 피부보다는 웃는 모습이 얼굴에 베어 자연스럽게 눈가 주름이 만들어지도록, 기미와 검버섯이 만들어진 시간들 속에 인자하고 온화한 그 사람의 성품이 드러나는 외모를 만들어야겠다. 굽은 허리를 더 꼿꼿이 세워 바른 체형을 만들고, 일상을 좀 더 활력 있게 채워 줄 근육을 위해 꾸준한 운동으로 탄탄한 몸을 만들어 가야겠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샤르트르의 말처럼 타인에게 보이는 시선과 나의 욕망 사이 간극을 줄이기 위해 애쓰며 살았던 삶은 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신경 쓰이던 것들을 하나, 둘씩 더 내려놓기로 했다. 신경 쓰이던 것에서 벗어나는 느낌, 그것은 자유롭고 해방감을 준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를 가두는, 나를 제약했던 것들을 하나둘씩 내려놓는다는 것.
채우기보다는 비우기, 붙들기보다는 잠시 손에서 놓아보는 것, 이것이 진정한 나의 해방일지가 아닐까.
by. 작가 세젤이맘 https://brunch.co.kr/@sso4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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