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독서MBA 뉴스레터 185] 나는 해외동 한옥에서 해외여행 한다...나는 혜화동 한옥에서 세계 여행한다.

권영구 2020. 9. 11. 10:41

 

 

- 한옥 게스트하우스 '유진하우스' -

 

서울 도심 혜화동의 75평 한옥은 우리 세 식구가 살기에는 큰 집이다. 우리 식구는 한옥을 널리 알리고, 가족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2009년 여름에 이사를 왔다. 한옥의 원형은 살리되, 손님들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만 수리했다. 작은 아파트를 팔아서 한옥을 사고, 수리하는 일은 벅찼다. 70년이나 된 오래된 집이었고, 2년 간 비어 있던 집이었다. 리모델링은 시골 어느 아파트 한 채를 사는 것만큼 돈이 많이 들었다. 원룸이나 지어서 임대업을 하는 것이 훨씬 쉬울텐데, 힘들게 무슨 게스트하우스를 하느냐고 주변에서 말리기도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꼭 하고 살겠다는 고집이 있었다. 그만큼 한옥을 지키고 싶은 욕심이 컸다.

 

유진하우스를 열고 얼마 되지 않아 KBS1 아침마당에 출연한 적이 있다. 나중에 작가님께 그 많은 게스트하우스 중 왜 우리 집을 선택했냐고 물었다. 내가 사전 인터뷰 때 이야기를 잘해주어서 그랬다고 한다. 전화상이라 편하게 말했을 뿐인데, 아마도 작가님이 좋게 보신 것 같다. 이금희 아나운서와 김재원 MC가 사회를 봤던 때다. 방송 출연 후, 전국에서 전화가 왔다. 연락이 없었던 사람들까지 소식을 물어왔다. 가끔 해외에 사는 사람들도 봤다고 해서 방송은 역시 무섭구나 싶었다.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진하우스는 언제 지어졌고, 누가 살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유진하우스의 뿌리를 찾던 중, 미국의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김태길 교수님 앞으로 보내온 편지를 받았다. 덕분에 우리나라 철학계의 거목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님께서 이 집에 사신 것을 알게 됐다. 그의 아드님이신 김도식 교수님께 이메일로 궁금한 내용을 문의했더니, 답변이 왔다. "혜화동 5-43번지는 제가 태어난 곳이지요. 지금도 본적이 그곳으로 되어 있고요. 저희 아버지께서 그곳에 언제부터 사셨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제가 64년생이니까 64년 이전부터 75년까지 저희 식구들이 그 집에 살았습니다. 75년에 문리대가 관악캠퍼스로 옮겨가면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옛집을 다시 보게 되어 반가운 마음입니다.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궁금하신 점이 있으면 또 연락해주세요." -김도식 드림.

 

김도식 교수님이 가족과 함께 우리 집에 직접 찾아오셨다. 서울대 철학과에서 강의하셨던 아버님께서는 한창 데모하던 시절 휴교령이 내려지면, 학생들을 집으로 불러 서재에서 공부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 의미 깊은 방을 '김태길 서재'라고 이름 붙였다. 김도식 교수님이 '우송 김태길 전집' 15권을 선물로 주셨다. 손님들이 읽을 수 있도록 창호 문 가까이 햇살드는 곳에 전집을 가장 잘 보이도록 꽂아 두었다. 2015년 12월 '서울미래유산 3호, 김태길 가옥'이라는 이름까지 생겼다. 유진하우스의 격이 한층 높아진 듯해서 뿌듯하다. 유진하우스가 김태길 교수님의 기념관으로 남아 오래오래 보존되기를 바란다. 2020년 11월 15일은 교수님께서 태어나신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는 유진하우스에서 열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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