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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칼럼] '4월 15일 대통령 지지율 68.5%, 청와대도 놀랐다'

권영구 2018. 4. 19. 10:44

[양상훈 칼럼] '4월 15일 대통령 지지율 68.5%, 청와대도 놀랐다'

  • 양상훈 주필


입력 : 2018.04.19 03:17

4월 15일 다음 날 무슨 일 벌어졌나
지지율 허망한 줄 모르고 똑같은 오기와 오만
이대로면 퇴임 후도 前 정권 데칼코마니 될 것

양상훈 주필
양상훈 주필

장관을 지낸 한 분이 서류 봉투 하나를 보내왔다. "꼭 보라"는 당부도 곁들였다. 열어보니 신문 기사를 복사한 종이 두 장이 들어 있었다. 기사 제목은 '대통령 지지율 68.5%… 청와대도 놀랐다'였다. 대통령 취임 1년에 즈음한 여론조사였다. 인사 실패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데도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아 청와대도 놀랐다는 기사였다.

그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에 대한 30대의 긍정 답변이 전(前) 조사에 비해 18%포인트 높게 나왔고 20대에서도 거부감이 줄었다. 여론조사 회사의 본부장은 그 이유에 대해 "견제 세력이 너무 무기력하다"고 했다. 야당이 2030세대의 희망을 반영하지 못하는 세력으로 인식되면서 대통령이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 본부장은 "대통령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통치를 하는 것으로 비치는데 야당은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보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외교·안보·대북 환경이 모두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거론했다.

기사 날짜를 가리고 보면 문재인 대통령 얘기 같다. 하지만 이 기사는 2014년 4월 15일 자다. 당시 취임 1년이 막 넘었던 박근혜 대통령 얘기다. 정말 대통령 이름만 '문재인'으로 바꾸면 그대로 써도 될 만큼 어쩌면 이렇게 같을까 싶다. 문 대통령도 이제 곧 취임 1년이다. 우연인지 여론조사 지지율도 박 전 대통령과 똑같다. 가장 최근 문 대통령 지지율은 66~72%였다. 이 기사를 보낸 분은 박 전 대통령도 취임 1년 즈음에는 지지율이 지금의 문 대통령 못지않았으며, 문재인 정부도 지금처럼 문제를 쌓아가다가는 박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데칼코마니"라며 "문 정권은 그들이 그토록 적폐라 욕하던 박 정권과 똑같다"고 했다. 데칼코마니는 종이 반쪽에 물감을 칠하고 다른 반쪽을 그 위에 덮어 똑같이 '복사'한 그림이다. 학교 때 해봤는데 그림을 펼쳐보면 똑같은 양쪽이 마주 보고 싸우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문재인과 박근혜가 똑같다'고 하면 두 사람 모두 엄청 화를 낼 것 같다. 하지만 '상대방 비판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고집과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독선은 데칼코마니다. 그 고집과 독선 아래에서 내각이 허수아비가 돼가는 것도 데칼코마니다. 지금 경제부총리는 경제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세금 뿌리는 사람이다. 돈 버는 게 아니라 쓰는 것만 하는데 누가 못하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결정 장애 증후군'에 걸려 교육 정책 전반을 아예 무정부 상태로 만들었다. 외교부 장관은 북핵 문제가 긴박하게 돌아가는데 없는 것이나 같은 투명인간이 돼 있고, 국방부 장관은 5100만명 안위가 걸린 사드 기지 공사를 시위대 100여 명 허락받고 한다. 폐비닐 대란 때 보니 시민 단체 출신 환경부 장·차관은 자기 업무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고, 가상 화폐가 뭔지도 모른 법무부 장관은 제 소관인 개헌 문제에 청와대 비서들이 나서는데도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세계가 일자리 호황인 반면 한국만 일자리 불황이다. 고용부 장관은 그게 자기 책임이라는 것도 모르는 것 같다. 복지부 장관은 '문재인 케어'라는 엄청난 돈이 드는 정책을 던져놓고 아직도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 설명을 못 하고 있다. 다른 장관들도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알 수 없다.

최근에는 '댓글 사건'까지 박 정권과 똑같이 터졌다. 한쪽은 국정원이 관련됐다고 하지만 대선 때 선거법 위반 혐의는 같다. 경찰이 사건을 들고 권력 눈치를 보면서 안절부절못하는 것, 검찰이 댓글 공작단 불기소 처분으로 사건 자체를 덮으려 했다는 것 등 판박이로 닮아가고 있다.

유 대표는 "검·경이 권력을 비호하고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며 "지난 정권의 댓글 공작으로 지금 줄줄이 구속 재판 받고 있는 사람들과 똑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사건에 특검이 도입되면 현재의 검찰, 경찰 지휘부와 청와대 관련자 모두가 수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박근혜에게 했던 정도의 절반만 해도 유 대표 말대로 '똑같은 처지'가 되는 것은 막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이분이 왜 이 옛날 기사를 꼭 보라고 그렇게 당부까지 했을까' 하는 의문은 남았 다. 순간 갑자기 떠오르는 이유가 있었다. 이 여론조사 기사가 나온 바로 다음 날 세월호 사고가 터졌다. 그 이후는 모두가 아는 것과 같다. 한때 70%라던 일본 아베 총리 지지율이 최근 20%대다. 대통령들이 지지율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알고 겸손하게 국정을 대하면 우리 정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이 정권도, 다음 정권도 깨닫지 못할 테지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18/201804180335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