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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與는 사과할 줄도 모르나?

권영구 2018. 4. 26. 09:33

[데스크에서] 與는 사과할 줄도 모르나?


입력 : 2018.04.26 03:12

김기식 사퇴·드루킹 댓글 조작… 現 정부 비판하면 積弊로 몰아
지지율만 믿고 오만에 빠지면 과거 집권층과 무엇이 다른가

최경운 정치부 차장
최경운 정치부 차장
청와대 행정관 출신 구청장 후보자의 여직원 폭행 사건이 알려진 24일 더불어민주당은 재빨리 그를 제명했다. 하지만 이런 인사를 집권당의 공직선거 후보자로 왜 공천했는지에 대해 중앙당에선 아무런 설명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초기 진술에서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다"는 얘기도 나온 터였다. 그런데도 '당 차원의 입장이 있느냐'는 물음에 당 관계자들은 "이미 제명하지 않았느냐"고만 했다.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여권에선 "제명했으니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문제의 구청장 후보자는 이번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본 대로 배운 대로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물론 여비서를 폭행하라고 배웠을 리는 없다. 하지만 적지 않은 국민은 얼마 전까지 문재인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한 이 후보자의 일탈에 대해 엄청난 실망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한 여권의 대응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민주당원이었던 드루킹이 댓글 조작을 벌인 사건을 두고 청와대와 민주당은 개인적 일탈일 뿐이고 오히려 '우리가 피해자'라고 했다. 드루킹과 수차례 만나고 인사 청탁까지 받은 김경수 의원에 대해서도 두둔하기만 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선 국기 문란이라며 총공세를 폈던 여권이 자기 쪽의 댓글 조작에 대해선 '면죄부 주기'나 '꼬리 자르기'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김 전 원장은 의원 시절 피감 기관 돈으로 외유성 출장을 여러 차례 다녀온 사실이 드러났다. 또 임기 종료 직전 정치 후원금 5000만원을 자기가 소장으로 있는 연구소에 기부한 일로 사퇴 요구도 받았다. 그러나 청와대는 "김 전 원장의 도덕성이 평균 이하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인사에서)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고도 했다. 김 전 원장의 도덕성 시비를 반(反)개혁 세력의 저항으로 해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청와대는 김 전 원장 사퇴 문제를 중앙선관위에 넘겼다. 그리고 '후원금 셀프 후원은 선거법 위반'이란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받고서야 김 전 원장을 사퇴시켰다. 그때도 청와대·여당은 김 전 원장 검증 실패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당 지도부와 친문 인사들은 선관위를 비판했다. 김 전 원장 거취 문제를 선관위 판단에 맡긴 건 청와대였는데,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 결과가 나오자 도리어 선관위를 공격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회담을 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문제뿐 아니라 내정(內政)에 대해서도 야당의 협력을 요청했다. 홍 대표가 "한국당을 '적폐(積弊) 세력'이라며 쥐 잡듯 해놓고선…"이라고 하자 문 대통령은 "그러니까 빨리 적폐를 내려놓으라"고 했다고 한다. 야당 인사는 "문 대통령에게서 반대 세력을 적폐로 보는 이분법적 사고가 느껴졌다"고 했다.

자신들과 관련된 각종 파문이 잇따르고 있는데도 청와대와 여당은 '오불관언'식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이는 70% 안팎을 오르내리는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이 지지율을 믿고 오만의 늪에 빠졌다가 우울한 퇴임을 맞은 전례는 한두 번이 아니다. 집권 세력의 오만이 부른 불행한 결과다. 자신들의 잘못에 사과 한마디 없이 침묵하는 여권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는 추상같고 자기에겐 한없이 관대한 '내로남불'이 언제까지 갈 거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25/201804250347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