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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염치없는 국정화조사위원장

권영구 2018. 3. 30. 11:07

[기자의 시각] 염치없는 국정화조사위원장

입력 : 2018.03.30 03:14

양지호 사회정책부 기자
양지호 사회정책부 기자
28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브리핑 현장. 7개월 조사 결과 발표를 맡은 고석규(전 목포대 총장) 위원장은 발표문 낭독 후 질의응답을 시작하자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딴 데 가 있는 사람 같았다.

먼저 그는 가장 중요한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 의뢰 여부를 알지 못했다. 고 위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조사위에 조사 권한이 없어 죄를 특정하지 못했고 수사 의뢰 대상에서 빠졌다"고 했다. 그러나 배포한 152쪽 분량 보고서는 박 전 대통령을 수사 의뢰 대상으로 적시해 놓고 있었다. 기자들 항의가 쏟아지자 고 위원장은 조사위원들과 15분 긴급 회의를 연 다음 "박근혜 대통령은 수사 의뢰 대상이 맞는다"고 했다. 주요 수사 의뢰 권고 대상조차 숙지하지 못하고 기자회견장에 온 것이다.

번복은 계속됐다. 고 위원장은 질의응답에서 "조사위가 수사 의뢰를 권고한 25명을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오후에 '주요' 수사 의뢰 대상자라며 14명만 공개했다. 이 '주요' 리스트에는 김재춘 전 교육부 차관 이름이 빠져 있었다. 그의 이름은 보고서에 십수 차례 나와 있었다. 물론 수사 의뢰 대상이었다. 고 위원장은 브리핑 전에는 이준식 전 교육부총리를 "직권 남용 혐의로 수사 의뢰를 권고했다"고 말했다가 오후에는"서류를 보지 않고 대답해서 혼선이 있었다"며 아니라고 했다.

그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었는지는 곧 밝혀졌다. 기자회견 후 고 위원장 측은 고 위원장의 전남 교육감 선거 출마 사실을 홍보하는 보도 자료를 기자들에게 보냈다. 보도 자료는 "28일 교육부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진상 조사 결과가 고석규 위원장에 의해 발표됐다"며 조사위원장 역할을 부각했다. 진상조사위원장 자리를 선거운동에 활용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자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이메일이 이어졌다.

민간인 중심 진상조사위는 독립적 인사가 진상을 드러내 줄 것이라는 믿음이 기본이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는 출범 당시부터 편향성 논란에 휩싸였다. 13명 중 대다수가 국정화 역사 교과서 교재 채택에 반대했던 학자, 민변 변호사, 시민 단체 인사였기 때문이다.

고 위원장도 문재인 캠프 교육 공약 을 만드는 데 참여한 인사였다. 그런 인사들이 조사한 내용이라 더욱 철저한 검증과 증거 제시가 필요했다. 그런데 고 위원장은 증거는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조사 결과 브리핑장을 사적인 출마 선언에 이용한 것이다. 조사 결과가 신뢰를 잃은 것은 물론 코미디에 가까운 결과였다. 의도했든 안 했든 그가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것은 교육부였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29/20180329034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