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모음

일본發 환율 변동, 양면성을 봐야

권영구 2013. 4. 10. 10:04

 

[일본 전문가 칼럼]

일본發 환율 변동, 양면성을 봐야

  • 야나기마치 이사오 게이오대학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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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입력 : 2013.03.26 03:07

  • '엔 약세 원화 강세' 지속 전망에 희비 엇갈리는 韓·日 기업들…
    환율 변화 과대평가할 게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 높일 기회 삼아야
    도요타도 엔高에 고통 받다가 車 품질 경쟁력 높여 전화위복

    야나기마치 이사오 게이오대학 교수·경영학
    일본 정부가 작년 11월 중의원을 해산한 이후 엔화(円貨)와 원화를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엔고(円高)로 고통받던 일본 기업들은 오랜만에 웃음 짓고 있다. 반면 원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울상을 짓는 한국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원 약세로 확보했던 수출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일본은행 총재로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전 아시아개발은행 총재가 20일 취임했다. 구로다 총재는 국회 등에 출석, 엔화에 대해 "2008년 리먼 쇼크 이후의 지나친 엔고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구로다 총재는 직접 환율 시장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강력한 금융 완화 정책을 공언하고 있다. 이는 엔 약세가 더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일본 경제에 엔화 약세의 긍정적 효과가 바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수출 증가라는 '엔저(円低) 혜택'이 국내 생산을 자극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국내 생산을 기초로 수출하는 기업에 환율 환경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자국 통화 가치가 낮으면 낮을수록 수출의 장점이 커진다. 하지만 국내 생산에 들어가는 부품·소재, 제조 장비 등을 해외에서 구매하는 분야에서는 수입 가격 상승으로 부담이 커진다. 밀가루, 석유 등 수입 물가가 본격적으로 상승해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도 커진다.

    이 때문에 자국 통화의 약세(弱勢)가 반드시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최고 경영자는 미리 시나리오 몇 개를 만들어 급변하는 환율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이 자국 통화를 둘러싼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환율 문제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글로벌 생산 활동의 진전이다. 자국 내 생산 거점에 지속적으로 의존해 수출하는 것은 글로벌 생산이 아니다. 글로벌화한 기업이라면 지구적 시각에서 생산하고 판매해야 한다. 환율 변동 대응책도 글로벌 생산 활동이라는 관점에서 마련해야 한다.

    환율의 변화를 '과대평가'할 것이 아니라 해당 기업이 가진 글로벌 경쟁력을 재평가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현재의 환율 환경 변화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1980년대 중반 도요타 자동차는 급격하게 진행된 엔고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도요타는 1980년대까지 일본에서 경제성이 높은 소형차를 생산해 미국에 수출했다. 두 번의 석유 위기를 거치면서 연비가 좋은 일본제 소형차 판매가 미국에서 급증했다. 대미 수출 증가는 미·일 간 무역 마찰과 수출 자율 규제 등의 단계를 거쳐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이어졌다. 플라자 합의로 엔 가치가 인위적으로 치솟으면서 일본 자동차의 가격 경쟁력이 급락, 대미 수출이 급감했다. 도요타는 환율 변화와 미국의 수입 규제에 대응, GM과 합작 회사 설립을 거쳐 단독 자본으로 미국에 생산 공장을 설립했다. 그 후 도요타의 소형차는 모두 현지 생산으로 바꾸고 환율 리스크를 최소화한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 생산, 미국으로 수출하는 차량은 가격이 비싼 고급차 등에 한정돼 있다. 북미 현지 공장에서 도요타가 일본 내 공장과 품질이 같은 자동차를 생산한 것을 주목하고 싶다. 도요다 에이지(豊田英二) 당시 도요타 회장이 고집한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는 단순한 환율 리스크를 회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외국 어디에서도 국내와 같은 고품질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판단했다.

    세계적 기업이 된 현대자동차는 어떤가. 한국 시장 점유율은 기아자동차를 포함하면 70%를 넘는다. 국내 시장을 과점 상태로 장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원화 약세 환경에서 매우 효과적인 수출 전략이다. 해외 생산 비율은 아직 상대적으로 낮다. 앞으로 해외 공장 건설을 진행하겠지만, 환율 환경에만 집착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제 자신이 가진 경쟁력을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 됐다. 한국 업체로부터 부품을 납품받는 일본 완성차 업체가 늘어나고 있다. 물론 지난해까지 이어진 원화 약세 환경이 크게 작용했다. 근본적으로는 한국 부품 업체의 품질이 획기적으로 향상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근 한국 부품 업체의 중국 공장에 대한 흥미로운 지적이 나온다. 품질관리가 중요한 공정은 일본 기업과 마찬가지로 고급 설비를 갖추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공정은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품질과 가격 양면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한국 부품 업체들의 새로운 시도이다. 원화 강세에 좌우되지 않는 새로운 경영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