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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넝쿨째 굴러온 당신 > 에서 '넝쿨'의 의미는

권영구 2012. 3. 30. 18:38

 

<넝쿨째 굴러온 당신> ‘알고 보니 고부지간’의 로맨스
엔터미디어|
신주진|
입력 2012.03.30 14:33
|수정 2012.03.30 14:56
 
- < 넝쿨 > , 막장코드의 절묘한 활용

[엔터미디어=신주진의 멜로홀릭] < 넝쿨째 굴러온 당신 > 에서 '넝쿨'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시집식구의 '시'자만 들어도 알러지를 일으키는 차윤희(김남주)가 고르고 고른 남편 테리 강(유준상)은 넝쿨째 굴러온 복덩이다. 의사에, 매너 좋고, 인간성 좋은 데다, 윤희가 그리도 바라마지 않던, 딸린 시집식구 하나 없는 고아이다. 그러나 이 넝쿨은 알고 보니 금쪽같은 아들을 잃어버린, 4대가 이리저리 얽히고 식구들이 주렁주렁 달린 대가족이었다. 복덩이 넝쿨이 한순간에 수렁의 넝쿨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 드라마는 똑똑하고 야무지고 실리적인 우리의 주인공이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코믹하게 그려간다. 차윤희는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상황 안으로 통째로 빠져버리는 것이며, 피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에 된통 걸려드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 속 아이러니는 차윤희가 처한 상황만이 아니다. 좀 더 근원적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방씨 일가에서 딸 이숙(조윤희)이가 태어나는 순간 아들 귀남이를 잃어버리는 상황 자체가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준다. 식구 중 가장 박식하고 현학적인 작은 아버지 방정배(김상호)의 빌붙어 살아가는 처지나 처자식을 위해 '생계형 바람'을 피우는 큰 사위 남남구(김형범)의 뻔뻔함의 처연함은 아이러니한 인간의 모습을 잘 포착한다.

< 넝쿨째 굴러온 당신 > 은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아이러니와 해학으로 넘쳐나는 가족코미디인 셈이다. 무엇보다 어느 새 가족드라마의 대세로 자리잡은 복수극 아니면 수난극복 성공기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이것이 그 옛날 < 사랑은 뭐길래 > 나 < 목욕탕집남자들 > 같은 김수현의 홈코미디를 잇는, 가족코미디의 부활을 알리는 반가운 신호일수도 있다.

특히 주인공인 윤희가 드라마를 만드는 외주제작사 제작피디라는 점은 작가 자신의 드라마에 대한 자의식과 방어심리를 드러낸다. 윤희가 '막장드라마'를 만들면서 자조적으로 내뱉는 '출생의 비밀', '알고 보니 오누이', '시한부 인생', '기억상실증' 등등 우리 드라마의 고질적인 경향들은 쉽게 조소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러나 실상 이러한 '막장 코드들'은 생각만큼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김수현의 < 천일의 약속 > 이 '시한부 인생'과 '기억상실증'을 알츠하이머라는 현대적 질병으로 업그레이드 시킨 것처럼. < 넝쿨째 굴러온 당신 > 역시 막장코드들의 절묘한 활용과 조합으로 맛깔스러운 가족코미디를 버무려냈다.

이 드라마의 아들 찾기 소동, 잃어버린 아들 찾기의 애절함은 '출생의 비밀'과 한 줄기이며, 남편의 바람으로 인한 일숙(양정아)의 수난은 그 흔한 불륜과 배신 코드이고, 이제 가족드라마의 영원한 테마인 엄청애여사(윤여정)와 차윤희의 고부갈등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드라마가 '알고 보니 고부지간'의 로맨스(?!)를 그린다는 사실이다. 이는 '알고 보니 오누이' 로맨스의 가족극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우연히 혹은 운명적으로 사랑을 하게 된 두 남녀가 알고 보니 오누이로 두 사람의 사랑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 '알고 보니 오누이' 로맨스라면, '알고 보니 고부지간'은 정반대의 설정이다. 우연히 혹은 운명적으로 앞뒷집에 살게 된 두 여자가 사사건건 부딪치며 서로 원수처럼 미워하나 알고 보니 고부관계로 함께 한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두 여자는 서로 증오해서는 안 되는, 결국 화해로 나아가게 되는 역전된 로맨스를 펼쳐 보일 것이다.

 

물론 '알고 보니 오누이'가 로미오와 줄리엣 식의 '알고 보니 원수지간'을 극한으로 몰고 간 비극이라면, '알고 보니 고부관계'는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식의 희극이라는 차이를 지닌다. 하지만 둘 다 인간의 얄궂은 운명을 아이러니하게 드러내주는 공통점을 지닌다. 게다가 양쪽 다 우리 사회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 약한 고리 '혈연관계'를 다룬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빠져나올 길은 없는 것이다. 그것도 오매불망 절통하게 그리워하던 30년 만에 만난 아들이라니, 알고 보니 시어머니, 알고 보니 시누이들로 인해 차윤희가 맞게 된 위기와 시련은 불 보듯 뻔한 것이다.

이러한 알고 보니 며느리와 시어머니 관계의 곤경은 그녀들이 서로의 정체를 알기 전에 이미 서로의 본색을 드러냈다는 사실에 있다. 모름지기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는 서로 적절한 가면을 써야만 평화롭게 유지될 수 있는 관계이다. 적당한 선에서 예의를 갖추고, 적절한 형식을 유지하면서, 서로 보지 말 것은 보지 않는 안전한 거리가 확보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차윤희와 엄청애여사는 미처 그 가면을 쓰기도 전에 무방비 상태로 맨얼굴을 서로에게 완전히 내보인 상황에 처했다. 엄청애여사가 보기에 너무나 반듯하고 훌륭한 앞집 신랑(자기 아들)에 비해 앞집 새댁(며느리)은 예의 없고, 이기적이고, 사치스럽고, 한 성깔 하고, 도무지 정을 붙일 수 없는 성격의 막돼먹은 여자인 것이다. 물론 차윤희가 보기에도 주인여자(시어머니)는 별나고, 변덕스럽고, 까탈스러운, 결코 상종하고 싶지 않은 종류의 사람인 것이다.

맨얼굴로 맞장 떴던 두 여자의 팽팽한 접전은 이제 제 2 라운드에 접어들었다. 물론 더욱 불리한 쪽은 을의 위치에 놓인 차윤희이다. 주렁주렁 넝쿨째 굴러온 대가족 틈바구니에서 그녀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고부관계의 틀을 뒤바꿀 맨얼굴의 전략을 밀어붙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장기인 '비위맞추기, 눈치보기, 아부떨기'의 전략이 새롭게 힘을 발휘할 것인가. 어느 쪽이건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맨얼굴을 본 두 여자의 로맨스가 기존의 고부관계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낼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2라운드의 포인트는 바로 그것이다.

칼럼니스트 신주진 joojin913@enter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