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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5년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무지막지한 자연의 힘에 상처입은 미국인들은 뉴올리언스 등지에서 발생한 인간의 행위에 또 한 번 상처입었다. 이곳에서는 약탈과 방화, 총격전, 성폭행 등 무법과 혼란의 상태가 지속됐다. 심지어 경찰까지 약탈행위에 가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주 방위군이 치안유지를 위해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2.
지난 11일 진도 9.0의 초강력 지진이 발생한 일본.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진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는 13일 물자가 부족해 생필품이 부족한 상태에서 새치기를 하거나 약탈하는 행위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오직 수백명이 차례로 줄을 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일부 남아 있는 신호등에서 시민들은 파란불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피해지역에 투입된 자위대는 구조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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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증유의 대재해를 맞은 일본인들의 시민의식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수만명의 사상자가 예상되는 이번 대지진 앞에서 울부짖거나 눈물을 쏟는 일본인들을 찾기가 어렵다.
혼란을 틈타 강도나 약탈 등의 범죄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언론을 통해 비춰진 일본인의 모습은 혼란 속에서 차례차례 줄을 서 구호식품을 받는 등 침착한 대응이 돋보이고 있다.
◈ 고도로 안정된 사회 시스템 안에서 돋보이는 성숙한 日 시민의식
이런 일본인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도로 안정된 사회 시스템에서 그 비결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건국대학교 박종명 교수는 "일본은 평균 소득이 3만5천불을 상회하고 빈부의 격차가 덜하기 때문에 비상상황이 오더라도 개인적으로 대응에서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은 혼란에 직면했을 때 덩달아 혼란에 빠지는 것보다는 질서를 지키는 게 전체로서는 이득이라는 것을 공감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보육원 교육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도록 교육을 받으며 이것이 결국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는 걸 체화한다"면서 "이를테면 줄 서는 게 흐트러지면 결국 자신이 손해라는 점, 비상시 시스템이 공평하게 작동하리라는 점을 믿기 때문에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가능한 최선을 다하는 전통
또 다른 전문가는 그 비결을 역사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다.
한림대학교 남기학 교수는 "역사 문화적으로 개인이 나서기보다는 전체를 의식하면서 구성원으로 위치를 잘 수행하는 습관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신분질서가 강해 한번 무사면 무사, 상인이면 상인, 농민이면 농민으로 살아야 했다는 것.
이에 따라 신분 상승을 추구하기 보다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가능한 최선을 다하는 데서 자아실현의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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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시적인 재해 대비 교육
다년간 일본에서 생활했던 전 영사관은 일본의 상시적인 재해 대비 교육이 그 비결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지난 2009년까지 일본 나고야에서 4년간 영사관을 지낸 서울 송파경찰서 교통과장 이영철 경정은 일본 생활에서 2005년과 2007년에 걸쳐 2번의 큰 지진을 겪었다고 했다.
"내륙지역에 지진이 나 도로가 절단되고 산사태로 차량이 파괴돼 사상자가 발생했던 큰 지진이었지만 당시 목격한 일본인들의 침착한 모습은 이번 지진 대응과 정확히 일치했다"고 이 경정은 말했다.
이 경정은 이러한 대응의 이면에는 철저한 '교육'이 깔려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인들은 긴급상황 앞에서 유아원 시절부터 교육받은 매뉴얼을 철저하게 이행한다는 것.
이 경정은 "일본은 이번 피해로 부족했던 매뉴얼을 보완해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철저히 교육시켜 또 다른 피해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2vs2@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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