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알기

어느 기업가의 일본에 관한 에세이

권영구 2010. 4. 7. 11:09

어느 기업가의 일본에 관한 에세이

 

어느 기업가의 일본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

 

 

아래 글은 오사카무역관에서 일본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가에게 의뢰하여 일본에서의 경험담을 적은 내용이다.(편집자주)

 

ㅇ 아키하바라의 젊은이가 떴다.

 

도쿄의 아키하바라는 일본 최대 규모의 전자상가로,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는 곳이기에 도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꼭 한번은 들러보곤 하는 곳이다.

 

아키하바라역을 나오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조그마한 광장이다. 이곳에서는 카세트, 넥타이, 라이터 등, 잡화류를 상시 취급하고 있어, 여행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좋은 볼꺼리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광장의 한 귀퉁이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 있어 호기심 반으로 그곳을 기웃거리게 된다.

 

다름아닌 우리나라의 남대문시장에서도 곧잘 목격할 수 있는 무우, 양배추, 당근 등의 야채를 용도에 맞게 써는 기구를 즉석에서 시범을 보이며 판매하는 노점이다.

 

소생도 아키하바라를 찾은지 벌써 10년이 다 돼 가지만, 시즌에 상관없이 늘 붐비는 이곳을 기웃거리며 열정적인 제품 설명과 시범을 보이는 젊은 사장(?)의 상술에 감탄을 하곤 했다.

 어쩌면 저렇게 조리 있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 회사에도 저런 영업사원이 있었으면!

 

길거리의 한 모퉁이에 자리잡은 내세울 것 없이 천해 보이는 장사이지만, 그에게는 언제 보아도 자신감과 열정이 넘쳐 있었다.

 

지난번 출장에서도 아키하바라에서 구입할 물건이 있어, 이곳 역을 통과했지만, 웬일인지 그 젊은이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를 만나려고 온 것은 아니지만, "혹시 감기라도 걸린 것은 아닌지?", "불황 때문에 망한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며 명물을 만나지 못한 서운함마저 들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바쁜 일정 속에서 그를 걱정할 만한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그러던 출장 마지막 날 오사카의 한 호텔에 투숙해 있던 소생은 무심코 돌린 TV 채널이 통신판매 채널로 연결되며 낯 익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성용 스타킹을 판매하는 장면에서 아키하바라의 그 젊은이가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고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와! 이 친구 드디어 떴구만……

 

묵묵하게 자신의 직업에 자신감을 가지고 일해 온 그를 알아보고 TV방송국에서 스카우트해 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세울만한 전문직은 아니지만, 그 분야에서 최고라는 인정을 받으며, 당당하게 스카우트됐다는 점이 너무도 흐뭇하게만 느껴졌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보다는 능숙한 입담으로 자신을 내세우려는 요즘의 일부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해 주고 싶은 말이 언뜻 생각이 난다. “자신을 어필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전문성을 키우는 것에 시간을 할애해라."

 

ㅇ 정보 전쟁시대

 

몇년전에 일본에서 개막된 한중일 리그 챔피언전에서 K리그의 우승팀인 某팀이 J리그의 쥬비로 이와타에 압승을 거두며 한국축구의 자존심을 세워 주었다. 시합이 끝난 후, 기자들의 인터뷰에서 한국 감독은 "우리는 이곳에 오기 전에 쥬비로 이와타팀을 면밀히 분석했고, 스트라이커 다카하라를 막는 연습을 했다"라며, 치밀한 준비를 자랑해, 일본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고 일본 매스컴들이 전했다.

 

일본 최고의 공격수중에 한 사람인 다카하라는 독일 분데스리가로 이적한 지 오래이며, 데뷔전에서 세계 최고의 골키퍼 칸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일본의 축구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기도 했다.

 

멋있는 플레이가 정보 부재에서 나온 황당한 실수로 반감되는 순간이었다. 스포츠뿐만이 아니라, 경제, 정치, 군사 등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정보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요즘, 의외로 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무관심이 자주 눈에 띄곤 한다.

 

회사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며, 돈과 인력을 써가며 지키고 있는 정보, 기밀의 50% 이상은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라는 모기업의 대표이사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다.

 

사내 책장에 쌓여 있는 많은 책자들, 서류 등은 몇 년째 손이 가지 않고 있는 말 그대로 묵은 포도주 신세가 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과거, 프로그래머 시절에 선배들로부터 “낡은 매뉴얼을 쌓아 두는 엔지니어는 성공할 수 없다."라며 버리지 못하는 버릇 때문에 핀잔을 받던 생각이 떠오른다.

 

한국을 잘 안다고 자처하는 주변국 사람들은 아직도 "한국에서는 숫갈로 밥을 먹어야 한다.", "국은 손으로 들어서는 안 된다."라며 거품을 물며 한국통임을 자부한다. 또한, 우리도 “일본에서는 밥을 손으로 들고 먹어야 한다.", "무엇 무엇을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 라는 그렇게 중요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정보를 고집해 오는 사람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낡은 정보에서 탈피하며,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노력은 쉽지 않지만, 정보 전쟁시대에 사는 우리로서는 승부에서 이기기 위한 하나의 필수과목이 된 듯하기에 새삼 중요성을 느끼는 요즘이다.  

“상대를 알고 싸우면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말처럼, 완벽한 정보 수집과 치밀한 준비야말로 승부세계에서 승리로 인도해 주는 지름길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가슴에 와 닿는다.

 

아무튼, 21세기 글로벌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로써, 국제화를 향한 정보 전쟁에 어느 정도 대처하고 있는지 뒤돌아 보아야 할 때이다.

 

ㅇ 일본경제의 장기적 불황,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극심한 불황, 부동산 가격의 폭락, 금융기관을 비롯한 중견기업들의 연쇄도산은 태평양전쟁의 폐허를 극복한 일본인들에게 또 다른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작년부터 일본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부 지역의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아우성들이다. 특히, 출장 중에 자주 이용하는 오사카-도쿄의 신칸센의 전경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다.

 

1일 생활권을 가능케 한 신칸센은 오사카에서 도쿄까지 3시간이 채 안 걸리는 고속 전철인 관계로 오사카의 셀러리맨들이 도쿄에서의 아침 10시 회의를 위해 주로 이용할 정도로 비즈니스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됐다.

 

소생도 일본 근무시절 타 지방에서의 회의를 위해 아침 일찍 신칸센을 타고 이동하곤 했다. 이 시간대에는 대개 40~50대들이 비즈니스를 위한 이동이 많다 보니 신칸센 전경이 마치 중년층의 전용 기차라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또한, 이들의 무표정에서 품어 나오는 담배연기는 일본의 현실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듯 해 안타까울 뿐이었다.

 

각 기업의 구조조정과 함께, 일본 사회를 이끌어 온 40~50대들의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듯 하다.

 

한편, 일본 출장 중에 자주 접하게 되는 중견기업인들을 비롯해 많은 일본 사람들은 지금의 불황 원인을 정치인들의 무능함과 실정 탓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일본경제의 불황 원인 중에 하나임에는 틀림없지만, 근본적으로 일본인들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많이 바뀌어 가고 있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종신 고용제,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외부로부터 접근하기 어렵게 하는 폐쇄적인 비즈니스 패턴, 답답하기만 한 늦은 의사결정 등이 결국에 일본을 21세기 정보화사회에서 경쟁력 약화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일본과 IT분야의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소생으로서는 그들의 늦은 의사결정에는 이골이 난 상태이다.

 

기획서를 제출하고 빨라야 6개월 후에나 결정이 나는 이들의 치밀한(?) 의사결정 탓에 본인의 성격도 바뀌는 것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우려를 하곤 한다. 물론, 항공기나 자동차의 엔진 등 고정밀 분야의 개발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치밀한 계획과 안전에 대한 완벽한 기술력이 바탕이 되어야 불행한 사고를 막을 수 있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검토를 해야 한다.

 

그러나, e-commerce분야의 경우에는 실행 해보지 않으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많으며, 아이디어와 기술력, 그리고 빠른 의사결정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21세기 정보화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부터 빠르게 변신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일본사회는 아직도 종래의 비즈니스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어떠한 프로젝트 추진에 있어서도 프로젝트의 성공보다는 실패했을 경우의 자신의 입지를 생각하며 움직이지 않는 중견 사원들의 나약함, 그리고 변신에 실패한 그들이 조직운영을 그들의 낡은 사고방식에 끼워 맞추려고 하는 분위기가 일본기업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신선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분위기 창출, 빠른 의사결정을 위한 심플한 조직운영,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정신이 기업의 흥망을 좌우한다는 생각을 새삼 느끼게 한다.

 

또한, 일본의 치밀함과 한국의 스피드가 조화를 이룬다면 대단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어, 21세기의 양국의 밀접한 교류는 서로에게 더할 나위 없는 비즈니스 찬스를 가져다 줄 것 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무튼, 지금이야말로 우리 젊은 세대들이 일본에 대한 기술력 콤플렉스 없이 당당하게 대결할 수 있도록 일본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작성자 : 주식회사 지아이링크 대표이사 김재호

 

(옮겨온 글/KO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