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지식

변화 두려워하는 조직 ‘넛지 방식’으로 혁신을

권영구 2009. 10. 11. 16:45
서구의 정책 설계자들은 최근 ‘넛지’를 이용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다수의 사람이 더 바람직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선보이고 있다.
[DBR]변화 두려워하는 조직 ‘넛지 방식’으로 혁신을
2009-10-10 02:57

 

2009-10-10 02:58

 

 변화관리 핵심은 직원들 심리관리
직설적 의사표현 통한 종용보다
배려 기반으로 한 우회화법 효과적


“요즘 일기예보를 들으니 날이 점점 더워진다고 하네요.”

집에 초대받은 일본 손님이 이런 얘기를 했다면 무슨 의미일까? 단순한 정보 전달이나 잡담이 아니다. 에어컨을 켜 달라는 간접적인 요구다. 일본에서 손님이 먼저 물을 달라거나 에어컨을 켜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실례로 여겨진다. 집주인이 손님을 방치했다는 자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주인을 모욕할 의도가 없는 손님은 “요즘 날씨가 덥다”는 식의 간접적인 의사 표현을 한다.

집단주의적 문화가 강한 동양인들은 직설적 의사표현으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여긴다. 반면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꼽는 서양인들은 누구든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바로 범죄율이 높은 미국에서 아직도 총기 소지가 허용되는 이유다. 많은 미국인은 총기 소지 규제가 국민의 자기방어권을 빼앗는 간섭이라고 생각한다.

○ 넛지는 동양의 배려와 일맥상통

그런데 최근 서양의 행동경제학자와 정책조언자들이 ‘개인자유 극대화가 최선의 결과를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 ‘사람은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고전경제학의 전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니얼 카프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사람들의 경제적 선택이 이성이 아니라 심리적 요인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증명해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서구의 지도자들은 최근 ‘넛지(nudge)’란 개념을 해결책으로 내놓고 있다(용어설명 참조). 이들은 넛지를 이용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다수가 더 바람직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한다. 미국 정부는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의 이론에 기반해 퇴직연금제도 ‘401(K) 저축플랜’을 재설계해 가입률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401(K) 저축플랜은 사실 매우 매력적인 제도다. 저축액에 대해 세금이 공제되고 많은 고용주가 분담금을 내 준다. 그렇지만 미가입자가 무려 30%나 됐다. 희망자만 가입했기 때문에 깜박 잊었거나 차일피일 미루다 가입을 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탈러는 401(K)의 기본 원칙(default)을 희망자만 가입하는 것에서 자동가입으로 바꿨다. 그 결과 401(K)의 가입률이 급격히 올라갔다. 과거 서양인들은 개인의 자율성 보장이 중요하다며 국가나 조직의 개입을 피해왔지만 이제 확연히 달라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

○ 넛지를 통한 변화관리

넛지는 기업 현장에서의 변화관리에 매우 유용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변화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조직원들이 리더의 생각을 저항감 없이 수용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변화관리의 핵심은 결국 ‘변화에 노출된 직원들의 심리관리’다. 사람의 마음은 장애물을 만나면(또는 저항감이 생기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돌아간다. 변화를 수용하게 만든다는 것은 바로 이 저항을 제거해 주는 일이며, 여기서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넛지다.

필자의 고객사 중 한 곳에서 새로운 성과관리 시스템을 도입한 적이 있다. 회사는 관리자들에게 휘하 직원을 관찰하고, 그들의 업적을 기록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관리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시간을 따로 내 노트에 무엇을 기록하는 것이 번거롭다는 이유에서였다.

필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객사에 간단한 넛지를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직원의 평가등급을 정할 때, 관련 부서장이 함께 모여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도록 만들었다. 관리자들은 처음에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과거 자신의 부서원만 평가하던 때와 달리 타 부서장과 토론까지 해야 하니 기록에 근거한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평가등급의 강제배분을 시도하자 이런 경향은 가속화했다. A등급을 받을 수 있는 직원의 수가 한정되자 관리자들은 서로 자기 부서원의 업적을 부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관찰기록을 강제하는 것보다 기록이 부족하면 부서원이 불이익을 받게 하는 넛지 시스템이 더 효과적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 넛지도 도구일 뿐, 핵심은 리더십

모든 도구가 그렇듯이 넛지도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좋게, 또는 나쁘게 쓰일 수도 있다. 설계자가 이기적인 의도 또는 악한 의도로 넛지를 활용한다면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해로운 선택을 하게 된다.

6·25전쟁 당시 연합군과 중공군은 전쟁포로를 정치적 선전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각각 심리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미군 포로가 공산주의로 전향한 기록이 있다. 중공군은 미군 포로들에게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글을 짓게 한 뒤, 우수한 글을 쓴 포로에게 담배와 사탕을 상으로 줬다. 작은 보상에 맛을 들인 포로들은 글짓기 대회가 열리면 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자연스럽게 상당수가 자발적 공산주의자로 변했다.

중공군은 포로들이 처음부터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도록 강제하지 않았다. 그 대신 경제적 불평등이란 소재를 통해 체제를 비판하도록 유도하는 넛지를 사용했다. 조금씩 심리적 저항요소가 제거되자, 일부 연합군 전쟁포로는 자신이 목숨을 걸고 싸운 대상인 공산주의로 전향하고 말았다.

이처럼 넛지는 누구에 의해 어떤 의도로 사용되느냐에 따른 다양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도구다. 리더가 바른 신념과 조직을 섬기는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넛지는 최악의 경영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리더의 인격과 도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김용성 휴잇어소시엇츠 상무 calvin.kim@hewitt.com

넛지(nudge)

넛지란 원래 ‘팔꿈치로 민다’는 뜻으로, 노골적이지 않게 특정한 선택을 넌지시 종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배려를 기반으로 하는 동양의 우회화법과 일맥상통한다.

:이 기사의 전문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2호(10월 1일자)에 실려 있습니다.

국내 첫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2호(2009년 10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개인 구독 문의 02-721-7800, 단체 구독 문의 02-2020-0685

▼Space Marketing/브랜드 정체성의 핵심은 매장 차별화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찾는 곳과 찾지 않는 곳이 있다. 이로 인해 공간의 쇠락과 부흥도 반복된다. 이제는 공간 마케팅도 사회의 트렌드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한다. 일반 호텔에서 묵던 여행객이 왜 워커힐호텔, 포시즌호텔, 모건호텔과 같은 디자인 호텔로 관심을 옮기는지, 이에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면밀히 연구해야 한다.

▼Academia & BUSINESS/영어 사용 인센티브 구조 확립이 성공 열쇠

LG전자는 국내 기업 가운데 이례적으로 영어 공용화 프로젝트를 추진해 성과를 거뒀다. 조직원들의 반발을 극복하고 영어 공용화에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영어 공용화에 대한 최고경영자(CEO)의 강한 의지 표명과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또 직원들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영어 공용화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추진 과정에서 직원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해야 한다.

MBA 통신/버핏을 낳은 CBS, 치열한 ‘황금 사냥’

비즈니스 스쿨의 꽃은 취업이다. 특히 MBA스쿨 가운데 세계 최고의 입학경쟁률을 보이는 미국 컬럼비아 경영대학원(CBS)은 취업의 양과 질에서 다른 아이비리그 MBA스쿨에 비해 많은 비교우위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아무리 우수한 학생이라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피해갈 수는 없다. 취업 걱정으로 뒤숭숭한 CBS의 모습을 전한다.

▼People in BOOK/포드 vs 페라리, 지옥 레이스 혁신 대결

1967년 포드는 프랑스 르망 레이스에서 페라리를 제치며 유럽 시장에 화려하게 진출했다. 이후 포드는 네 번 연속 르망 레이스 제패 기록을 세웠고, 재규어와 랜드로버, 볼보 등을 인수하며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가 됐다. 포드가 고전하고 있는 반면, 페라리는 여전히 슈퍼 카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 포드와 페라리의 대결은 핵심 역량과 끊임없는 혁신에 대한 교훈을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