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같은 이야기

용서의 제물

권영구 2007. 10. 21. 17:37

장미-피스 ⓒ최용우

  용서의 제물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읽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좋은 뜻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만 기억하지 마시고
악의를 품고 있는 사람들도 기억하소서.
하지만, 그들이 저희에게 준 고통만을 기억하지 마시고
그 고통으로 인해 저희들이 얻게 된 열매인
저희들의 우정과 충성심, 겸손함과 용기, 관대함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을 통해 성장한
저희들 마음의 위대함도 생각하소서.
그리하여 마지막 심판 날에 저희가 맺은 이 모든 열매들이
저희에게 고통을 준 그 사람들을 위한
용서의 제물이 되게 하소서.>

놀랍게도 이 기도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여인들의 죽음의 수용소로 잘 알려진 독일의 라벤스부르크 처형장에서 발견된 기도문입니다. 라벤스부르크 수용소는 오랜 시간에 걸친 중노동, 혼잡하고 쥐가 들끓으며 난방이 되지 않는 건물, 극소량의 식사, 그리고 잔인한 경비병, 몸이 허약하거나 말을 듣지 않는 죄수들을 처형하는 가스실이 있었던 곳입니다. 라벤스부르크에서는 모두 9만 6천여 명의 어린이와 여성이 희생되었습니다.
악의와 증오, 어둠과 공포만이 판을 치는 절망의 땅에서 이렇게 기도를 드렸던 이가 있었다는 사실 앞에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죠지 캠벨의 <신화의 힘>이라는 책에는 우리에게는 아주 낯설게 다가오는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마야 인디언이 남긴 그림 중에 공놀이를 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병에다 그린 그림인데, 그들은 의례의 마당에서 지금의 농구경기 비슷한 시합을 합니다.
승패가 결정이 되고나면 이긴 팀의 주장은 상을 받게 됩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진 팀의 주장에 의해 제물로 희생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목이 잘려 희생제물이 되는 것이 이긴 팀의 주장에게 주어지는 상이었습니다.
삶에서 승리한 자만이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옛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습니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일부러 경기에서 지려고 애쓰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겠지요. 그리고 이긴 자에게 주어지는 거룩한 희생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용서는 그 말이 갖고 있는 아름다운 의미와는 달리 실제로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강한 자만이 용서할 수가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승리한 자만이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07/3/18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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