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토리
55년 전 그 날을 기억하며
2023.04.21
본 글은 김경덕 작가님의 2019년도 작성 글로
현 시점과 시간적 차이가 발생함을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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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는 13살, 까까머리 철모르는 중학교 일 학년이었다.
독재가 뭔지, 부정 선거가 뭔지, 혁명이 뭔지, 철없는 나에게는 전혀 관심 밖의 일들이었고 알려고 노력조차 하지도 않았다. 부산 대학교 앞에 사시는 친척 집에서 잠깐 기숙을 하다 4월 초순 부산 서면 근처에 있는 좌수영(양정동)에 방을 얻어 고3인 사촌 누나와 자취하고 있었다. 지금은 지하철로 모두 바뀌었지만, 당시 부산에는 3개의 지상 전차 노선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동래온천장-서면로터리 노선이다. 나는 이 전차 노선을 이용하여 매일 학교가 있는 동래(명륜동)와 서면을 왔다 갔다 했다.
3.15 부정 선거 후 얼마 있다 데모가 간간이 일어나고 있을 즈음 얼굴에 흉측하게 최루탄이 박혀있는 이주열 학생의 시신이 마산 근처 바닷가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학교에서 오전 수업을 받고 있는데 갑자기 수업을 중단하고 속히 귀가하라는 학교장의 특별 지시가 내려졌다.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수업이 없어졌다고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가방을 챙겨 들고 전차 정거장에 나가니 서면 행 전차는 바로 전역인 온천장역에서 타고 내려오는 대학생들로 만 원이 되어 있어서 더 이상 탈 수가 없었다. 버스도 마찬가지 모든 차는 부산 시내로 내려가는 학생들로 인해 만원이었다. 조금 있으니까 도로를 따라서 삼삼오오 떼를 지어 걸어서 내려오는 부산 대학생들이 보였다. 당시 전차는 외선이라 정류장에서 상, 하행선이 서로 교차해야만 했다. 한참을 기다린 후 교차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전차 창문을 통해 친구와 함께 겨우 올라탈 수가 있었다.
나는 호기심에 내가 내릴 역에 내리지 않고 대학생들을 따라 그냥 더 내려갔다. 서면 로터리 전 정거장이 부전역, 전차 차장이 데모로 인해 더 이상 운행을 할 수가 없다고 육성으로 안내 방송하였다. 우리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대학생들 틈에 끼어 서면 로터리까지 걸어서 내려갔다. 그 당시 서면 로터리는 규모가 상당히 컸다.
로터리 한가운데로 남북으로 전차 노선이 지나고 아마 동래 온천장 노선의 종점이 이곳이라 로터리 한가운데 갈아타는 역사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로터리 서편에는 현대식 건물로 10층 정도의 부산진 경찰서가 우뚝 솟아있었고 남쪽 모퉁이에는 북성극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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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도착한 시간은 아마 오후 2시 전후 이미 로터리는 데모 학생들과 일반 시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위치한 곳은 부산진 경찰서를 로터리 바로 가로질러 바라볼 수 있는 동북쪽 방향이었다. 로터리 가운데는 각종 키 작은 나무와 화초들이 심어져 있었고 도로는 완전 포장이 되지 않고 부분만 포장된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인도와 차도의 구분도 제대로 돼 있지 않던 시절이었다.
무슨 구호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구호를 외치고 나면 노래를 부르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경찰서 확성기에서 경고 방송이 울러 펴졌다.
‘시민 여러분들에게 경고합니다.’
‘x 시 xx 분까지 모두 해산해 주십시오’
‘해산에 응하지 않으면 강제로 해산시키거나 발포도 불사할 것입니다.’
이런 협박조 방송이 계속 흘러나왔다.
데모에 참여한 시민이나 학생들은 의례적으로 하는 방송인 양 별로 개의치 않은 듯했다. 방송이 한두 번 더 나온 후 갑자기 따닥따닥한 날카로우나 마치 콩 튀기는 것 같은 소리가 몇 차례 들렸다. 그런데 바로 내 옆에서 비명이 들리고 검정 교복을 입고 있는 고등학생 한 명을 어른들이 양어깨를 부축하면서 끌다시피 데리고 나오고 있었다. 얼핏 보니 이 고등학생의 허리춤에서 붉은 선혈이 낭자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한 군중들은 총소리에 놀라기는커녕 총알에 맞아 쓰러질 각오로 더 강렬한 기세로 경찰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무서워서 끝까지 지켜보지를 못하고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날 밤 이 경찰서는 분노한 데모 군중에 의해 불태워졌다. 몇 명이 더 희생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이 자리에서 희생된 학생이 경남 공고생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아마 오늘 전후가 55년 전 그날이 아니었나 하는 짐작이 간다. 철없는 시절 나도 그 현장을 지켰노라고 부끄럽게 자위해 보면서 그날 4월 혁명을 다시 회상해 본다.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이렇게 서서히 무르익어 갔다. 그 역사의 현장을 항상 지킨 주인공이 돌이켜보니 바로 나 자신이었다.
by 김경덕 https://brunch.co.kr/@kyungdukkim/90
(이 글은 김경덕 작가님께서 행복한가에 기부해주신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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