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독서MBA 뉴스레터 172] 교양수업 365...한 남자가 유대교 현자인 힐렐에게 질문을 했다.

권영구 2020. 8. 6. 09:50

 

 

 

전설에 의하면 한 남자가 유대교 현자인 힐렐을 찾아가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고 한다. "힐렐 선생님, 유대교의 교리를 한마디로 설명해주면 자신도 유대교로 개종하겠습니다." 힐렐은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마라. 이것이 유대교 율법의 전부다. 다른 것은 그저 해설에 불과하다" 서양에서 가장 유명한 말인 이 명확한 황금률이 힐렐 가르침의 정수인 인도주의적 성향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유대교 역사의 중심인물인 힐렐은 당시 가장 존경받는 종교적 권위자로 유대교의 여러 율법과 전통을 성문화했다.

 

일생의 대부분을 예루살렘에서 보내긴 했지만 그는 유대인이 많이 살았던 바빌론에서 태어났으며, 성경에 등장하는 다윗 왕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예루살렘으로 이주한 힐렐은 유대교 율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학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신비한 의학에 관한 성가신 질문 하나를 해결한 후 유대교의 최고 권위자로 추대되었다고 한다. 그때 예루살렘과 주변 지역은 로마제국에 흡수되어 있었는데, 그에 따른 정치적 혼란으로 유대교 공동체가 분열되었다. 힐렐은 특히 사두개파에 반대하는 종파인 바리새파를 지지했다.

 

정치적으로 사두개파는 귀족을 대변했고, 힐렐의 바리새파는 평민들의 지지를 더 많이 누리고 있었다. 신학적으로 사두개파는 고대 유대교 경전을 문자 그대로 접근하는 방식을 선호해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그러나 힐렐은 경전이 시작점에 불과하며 유대교 지도자인 랍비에 의해 해석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힐렐의 글은 공동체와 사회정의 그리고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사망한 후, 특히 70년에 두 번째 성전이 무너지고 난 후, 바리새파 유대교가 유대교 공동체의 주요 세력으로 떠올랐고, 결국 현대의 랍비 유대교로 진화했다. 이는 오늘날 전 세계 유대교의 주요 세력이기도 하다.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힐렐은 너무나 가난해서 토라(율법) 공부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었다. 그는 비용을 감면 받을 수 있었는데, 나중에는 가난으로 인해 뛰어난 학자가 토라를 공부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비용 지불 자체가 폐지되었다. 그리고 랍비들에 의해 작성된 경전에 대한 해석은 총체적으로 '탈무드'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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