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로 28세에 대과에 급제하였다. 다산은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로 18년간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많은 목민심서를 비롯한 520여 권을 저술했다. 과학, 공학, 역사, 의학, 지리, 철학사상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썼다. 다산은 강진 유배의 힘든 18년을 오로지 백성을 위해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그리고 자식들 교육을 위해 100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두 아들에게 ‘오직 독서만이 살길이다’라며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배 중이던 다산은 아들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가 누차 말했듯이 청족(여러 세대에 거쳐 벼슬을 해온 명문가 집안) 집안의 사람들은 굳이 독서를 하지 않더라도 본래 존중을 받게 마련이지만, 폐족인데다 교양과 학식마저 없으면 더 미움을 받는다. 배우는 일에 모든 힘을 다하여 우리 집안의 글 짓는 전통이 너희 세대에 더욱 창대해지도록 노력해라. 대대로 이어지는 벼슬도 이런 맑고 귀한 전통과는 바꿀 수 없다. 부와 권력을 가진 집안의 자제에게는 공부의 참맛이 허락되지 않는다. 또한 시골의 가난한 천재에게 공부의 심오한 경지가 쉽게 허락되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벼슬하던 집안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견문을 넓히고, 커서는 온갖 어려움을 겪은 너희들 같은 사람만이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다. 부유한 고관대작 가문의 자제나 시골의 한미한(가난하고 지체가 변변하지 못하다) 집안에서 태어난 천재들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읽기만 한다고 해서 독서라고 부를 수 없다는 뜻이다. 3대째 의원 가문이 아닌 의원이 지어준 약은 먹지 말라는 말이 있다. 문장 또한 그러하다. 대대로 내려오는 문장가 집안이라야 그 자제들이 훌륭한 문장을 지을 수 있다.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세워야 한다. 배움에 뜻을 두지 않았다면 진정한 독서를 할 수 없다. 근본이란 무엇인가? 효도와 공경이다. 먼저 효도와 공경하는 일을 힘써 실천한 후에 근본이 세워진다면 배움은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이다. 배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었다면, 독서의 단계를 별도로 찾지 않아도 된다.”
“나는 몇 해 전부터 독서의 진면목을 대략이나마 알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읽기만 해서는 매일같이 수천 번을 읽어도 읽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다. 하나하나의 글자를 볼 때마다 그 뜻을 정확히 모르면 다양하게 찾아보고 세밀하게 연구해서 근원을 파헤쳐 글의 전모를 파악해야 한다. 날마다 이렇게 하는 습관을 들이면 한 종의 책을 읽을 때 백 종의 책을 참고하게 되고, 해당되는 책의 내용에 대해서도 훤히 알게 된다. 이 점을 잊지 말거라. 가령 ‘사기’의 ‘자객열전’을 읽다가 ‘기조취도’라는 구절을 만났을 때 스승에게 ‘조란 무엇을 말합니까?’라고 물어라. 그러면 스승은 ‘이별할 때 지내는 제사다’라고 답해줄 것이다. 다시 ‘다른 글자가 아닌 꼭 '조'라고 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라. 이때 스승이 ‘그건 나도 모르겠다’고 답하면, 집에 돌아와서 사전을 꺼내어 조의 본뜻을 찾아보아라. 이런 식으로 근본적인 의미를 찾고, 또한 지엽적인 뜻도 찾아보아라. 통전, 통지, 통고와 같은 책에서 ‘조’라는 제사의 예절까지 자세히 참고하여 책을 만들면 불후의 명작이 될 것이다. 초서(책에서 중요 내용을 가려 뽑아 옮겨 쓰는 일)하는 법은 먼저 자신의 생각을 미리 정한 다음 만들 책의 규모와 차례를 정하고, 그 후에 책에서 내용을 가려 뽑아야만 절묘한 일관성이 있게 된다. 만약 정해진 규모와 차례 이외의 내용이 있는데 책에 수록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는 별도로 한 권을 준비해두고 해당 구절을 만날 때마다 기록해두면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