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너무나도 유명한 걸작입니다. 돈 맥클린의 노래 ‘빈센트’로도 유명한 작품이죠. 빈 센트 반 고흐가 죽기 약 일 년 전,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입원한 생레미 정신요양원에서 그렸던 작품입니다. 입원한 지 약 한 달 쯤이 돼서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돈 맥클린의 가사처럼 그때 침대에 앉아 동쪽으로 뚫린 창문을 통해 본 여름 새벽하늘을 기억했다가, 다음날 아침 작업실에 내려가 화폭에 담았다고 합니다. 맨 앞에 꼬불꼬불한 나무부터 중간에 파란 줄이 꼬불꼬불한 언덕, 그리고 꼬불꼬불한 별이 보이는 밤하늘까지 굉장히 정신없어 보이는 것 같아도 꼬불꼬불한 붓 자국이 시선을 자연스럽게 다음 목적지로 이동시키는 듯합니다.
누군가는 앞에 꼬불꼬불한 사이프러스 나무가 죽음을 상징한다고도 합니다. 일 년 후에 자신이 죽을 것을 미리 알고 그렸다고 말이지요. 또 누군가는 불을 그렸다고 합니다. 활활 타오르는 자신의 열정을 정신요양원에서 풀지 못해 작품에 타오르는 불처럼 나무를 그렸다고 말이죠. 그런데 또 누구는 관리가 안 된 사이프러스 나무가 원래 저런 모습이었다고도 합니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그 새벽에 달빛을 등져 어두운 사이프러스 나무를 보면서 일 년 후 죽을 자신을 봤을 수도, 활활 타오르는 열정을 봤을 수도 있겠네요. 이른 새벽인데도 마을에는 모두 불이 켜져 있습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인가 봐요. 그런데 교회만 불이 꺼져 있네요. 목회자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을 받아주지 않았던 교회에 대한 반항의 표현일까요? 또는 자신의 삶에서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아 교회의 불을 꺼버린 걸까요? 높이 솟은 첨탑 위에 십자가에라도 빨간 불이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빈센트가 일 년 후면 죽을 거란 것을 아니까요.
다시 꼬불꼬불한 숲을 지나 언덕 능선을 오릅니다. 짙은 노란 달빛 아래서도 언덕은 차가운 프러시안블루네요. 언덕에도 나무나 집이 하나 그려져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그랬더라면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것들이 꼬불꼬불한 사이프러스 나무와 불 꺼진 교회의 첨탑 말고도 더 많았을 텐데요. 그래서일까 더 슬픈 그림 같습니다. 하늘에는 그믐달이 떠 있습니다. 엄청 밝네요. 흔한 그믐달인데 좀 특이해 보이네요. 신윤복의 ‘월하정인’에도 특이한 그믐달이 떠 있는데 말이죠. 부분 월식으로 생긴 그믐달이라고 하던데, 빈센트보다 100년 전 조선에서 신윤복이 그믐달을 그려서 비밀의 사랑을 그렸습니다. 혹시 빈센트도 그믐달에다 무슨 비밀을 숨겨둔 건 아닐까요? 달 옆에는 11개의 별들도 초롱초롱합니다. 그 중에 사이프러스 나무 오른쪽의 낮은 별이 가장 밝네요. 새벽별 금성이라네요. 하버드대학교의 천문학자 찰스 휘트니 교수는 실제로 1889년 프랑스 생레미의 여름 새벽하늘 별자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더니, 빈센트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려진 별들의 위치와 일치했다고 합니다. 그의 뛰어난 관찰력과 우수한 기억력, 그리고 정확한 표현력에 완벽한 작품이 완성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죠.
새벽하늘에 달과 별이 궁금합니다. 수많은 별 중에 왜 유독 그믐달과 11개의 별만 골라서 그렸을까요? 어쩌면 정신요양원에 갇힌 자신의 처지가 마치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꿈의 소년 요셉 같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요? 창세기 37장 9절에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별이 내게 절 하더이다 하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아 색동옷을 입은 요셉은 형들에 의해 억울하게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가 보디발의 하인으로 고생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그런데 희망이 없었던 요셉도 어느 날 파라오의 선택을 받아 총리가 됩니다. 빈센트도 한때 잘나갔던 미술상으로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는데, 단지 이상하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잘리고, 신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자신을 안 받아주고, 그림은 팔리지도 않고, 동생에게 빌붙어 산 게 어언 10년. 요셉은 감옥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모든 일을 형통케 하고 결국 파라오의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을 구원했는데, 빈센트도 자신이 요셉과 같은 처지인 만큼 하나님이 함께해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담은 건 아닐까요?
하늘에 별이 11개 그려져 있다고 해서 성경 구절과 맞추는 건 무리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림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지을 때 사용하라고 명령한 고페르 나무(우리말 성경에는 잣나무)거든요. 물 심판 때 노아를 구원한 방주의 재료가 사이프러스 나무였습니다. 잠 못 드는 새벽, 정신요양원 침대에 앉아 창밖의 별과 달을 보며 처량하기 그지없는 지난 36년의 삶을 돌아보니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을 겁니다. 그러나 요셉과도 함께한 하나님이 자신과도 함께할 거란 희망을 가지고 다시 그림을 그리면, 분명히 성공할 거라는 소망으로 11개의 별과 사이프러스 나무를 그린 건 아닐까요? 결국 요셉을 버린 10명의 형과 1명의 동생이 자신에게 절을 했으니까요. 빈센트에게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던 미술계가 몇 년 후엔 결국 절을 합니다. 조금만 더 참아보지 그랬어요.
돈 맥클린의 가사 “이제 알 것 같아. 당신이 내게 말하려고 했던 것, 그리고 네가 제정신을 위해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들을 풀어주려고 했는지,” 이제 알 것 같네요. 그저 예쁜 이 그림에 빈센트의 한이 담겼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얽매던 죽음의 고통을 풀어보려 했다는 것. 어쩌면 빈센트는 자신이 실패할 것을 짐작 했나 봐요. 자기 생각에도 팔릴 것 같은 그림에는 ‘Vincent'라고 사인을 했는데, 이 걸작에는 사인이 없습니다. 이 그림이 전 세계 어느 그림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될 줄은 몰랐나 봐요. 알았더라면 작품에 사인도 하고 죽지 않았겠죠. 그래서일까 차가워야 할 파란 그림이 짙은 노란 달과 반짝이는 별 때문인지 마냥 예뻐 보였는데, 빈센트가 이 그림을 그렸을 때 심정을 생각해보면 왜 온통 푸른색을 썼는지 이해가 될 법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요셉의 끝도 빈센트의 끝도 알았으니, 내게 시련이 다시 닥치더라도 이 그림을 떠올리면 언젠가는 그 시련을 이겨내고 내게 절할 날이 올 것이란 희망이 생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