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는 어떻게 최고의 화폐가 되었을까?
1994년 뉴햄프셔 산악지대의 한 호텔에서 그 일은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국제 금융 안정을 꾀하는 회의가 열렸는데, 지명을 따서 브레턴우즈 협정이라 부른다. 미국 관리들이 주도한 이 회의에서 달러는 세계 표준 준비통화로 지정됐다. 국가 간 무역 대금을 결제할 때, 공식통화로 달러가 쓰인다는 의미다. 물론 달러 가치 역시 금의 가치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이것이 바로 금 본위의 달러 표준 국제 금융 시스템의 탄생이다. 이러한 엄격한 시스템에 혼란이 가해지지 않도록 자금 이전은 철저히 통제된다. 미국이 발행하는 달러 총액과 흐름을 감시하는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때 설립됐다. 국제 통화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시스템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그래도 달러는 여전히 최고의 준비통화로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현금의 70%를 차지하며, 교역에 사용하는 표준 지불통화다. 달러가 여전히 왕좌를 차지하고 있기에, 미국 국채 역시 가장 명망 있고 안전한 채권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중국의 위상이 커지면서 위안화가 달러를 밀어내고 그 지위를 차지할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중국은 미국 채권을 보유함으로써 안전하고 안정적인 수입을 추가해 그들의 영향력을 확대해간다. 미국에 대한 통제력도 발휘할 수 있다. 다른 각도로 한 번 보자. 미국 소비자가 지속적으로 값싼 중국 제품을 사들인다. 그 돈으로 중국 정부는 미국 재무부 채권을 사들인다. 그 돈으로 미국 정부는 학교도 짓고 노인들에게 연금도 지급하고 군인들에게 급료도 준다. 이렇게 미국 경제에 현금이 계속 들어오는 덕에 소비자들은 다시 중국 제품을 쇼핑할 수 있다. 결국 중국이 미국 정부에 대출을 해줌으로써 미국인들에게 쇼핑 자금을 대주는 셈이다. 미국인이 계속 돈을 쓰고 청구서는 중국이 갚아준다. 물론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 중국은 미국의 사채업자가 되는 셈이다.
미국은 왜 그렇게 채권을 많이 발행할까?
사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대규모 군사 작전, 고령화로 인한 연금과 건강보험 수요, 재정 위기..., 돈 들어갈 곳 천지다. 물론 미국도 대차대조표를 맞추고 세수로 모든 비용을 충당하고 싶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보니 대출에 의존해야 했고, 빚은 점점 늘었다. 채권 발행은 은행 대출보다 싼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게다가 세계에 그 채권을 원하는 이들은 중국 말고도 많다. 달러를 발행하는 것도, 그걸 사용하는 것도 미국이지만, 엄밀히 말해 그 달러가 미국 것이냐 아니면 중국 정부 것이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미국인이 주책 대출금을 갚을 수 있는 것 역시 어찌 보면 중국 덕택이다. 미국 채권에 대한 수요가 많으면 채권 가격이 오르고, 미국 정부는 이자를 덜 내도된다. 물론 채권을 산 중국은 수익률이 낮아진다. 이는 미국 내 금리에도 영향을 주어, 주택 대출금 금리도 낮아진다. 값싼 중국산 제품이 물가를 낮게 유지시켜주니까, 이 역시 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미국인들은 그들의 구매, 소득, 물가, 금리 등 재무 상태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들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중국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그럼 미국이 위험에 처한 건 아닐까?
중국이 작심하고 미국 채권을 내다팔면 어떻게 될까? 중국이 미국 경제의 돈줄을 쥐고 있기에, 중국은 미국 경제를 인질 삼아 횡포를 부릴 수 있을까? 중국은 2016년 220조 원 어치의 채권을 매각했다. 중국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았던 트럼프가 막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의 일이다. 언론사들은 발 빠르게 ‘미국의 최대 채권자가 트럼프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채권을 매각했다’고 헤드라인을 달았다. 미국의 부채가 너무 비대해진 것에 대한 우려는 당연히 존재한다. 미국은 자국 채권의 인기가 높아진 데 고무돼서, 정신없이 돈을 차입했다. 다행히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미국 채권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일본은 전통적인 오랜 고객이다. 2016년 일본은 다시 중국을 제치고 이 종잇조각을 가장 많이 수집한 나라로 올라섰다. 그 뒤를 바짝 좇는 나라는 2016년 기준으로 아일랜드가 약270조 원어치의 미국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케이맨 제도인데, 고작 6만 명이 거주하는 카리브 해의 작은 섬나라는 미국 채권 약312조 원 어치를 갖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중앙은행이 아닌 기업들이 채권을 보유한다. 두 국가 모두 관대한 세금 규정 덕에 헤지펀드나 금융기관의 조세 피난처로 유명하다. 금융권에서 제일 많은 돈을 굴리는 이들도 미국 재무부 채권 같은 안전한 곳에 분산투자를 선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