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재와 관련된 책자를 보면, 가장 오류가 많은 부분이 좌향시각이다. 문화재 관련 서적들은 대부분 서양시각으로 우리의 문화재를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문화재를 다루는 최고 기관인 문화재청에서 나온 책자에서도 간혹 이런 오류가 발견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 문화재를 보는 시각은 전부 뒤틀리게 된다. 좌우 개념속에는 우리 선조들의 공간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물을 볼 때 좌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좌'란 내가 앉아 있는 자리이다. 즉, 내가 중심이 된다. 내가 중심이 되어 앞을 바라보는 데 그 방향을 '향'이라 부른다. '향할 향' 따라서 내가 앉아서 앞을 바라보는 것을 '좌향'이라 한다. 이것은 주인시각이다. 상대적으로 손님시각이란 것이 있다. 내 앞에서 서서 나를 향해 바라보는 것이다. 일명 서양인의 시각이라 부른다. 우리의 모든 문화재는 반드시 주인시각을 기준으로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문화재 답사를 할 때 주인은 누구인가? 문화재 목록에서 찾을 수 있다. 문화재 목록을 보면 국보 및 보물급 문화재의 대부분은 불교 및 유교와 관련되어 있다.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사찰에 있고, 유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궁궐, 서원, 사대부 양반들의 주택 등에 밀집되어 있다. 사찰에서는 부처와 보살, 궁궐에서는 왕과 왕비, 서원에서는 원장, 왕릉에서는 돌아가신 왕과 왕비가 누워 계시는 봉분, 그리고 사대부 양반가에서는 사랑채에 거처하는 양반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태조 이성계는 성리학적 이념을 바탕으로 조선을 개국한 후, 수도를 한양으로 옮겼다. 도읍지가 정해지면 도성 안에 시급하게 건설해야 할 게 있다. 바로 궁궐, 종묘, 사직, 성곽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조형물이 종묘와 사직이다. 먼저 왕이 거주하고 정치를 하는 궁궐의 터가 정해지면 그 터를 기준으로 종묘와 사직을 건설해야 한다. 이때 좌묘우사의 원칙이 등장한다. 궁궐의 왼쪽에는 종묘를 건립하고,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세운다. 조선 최초의 정궁은 경복궁이다. 임금은 남쪽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유교적 원칙에 입각하여 남향으로 건립한 것이 경복궁이다. 이 궁궐이 조선의 수도 한양의 계획 기준이 된다. 그래서 남향을 한 경복궁을 기준으로 왼쪽에 종묘를, 오른쪽에 사직단을 조성했다. 즉, 오늘날 경복궁에서 세종로 광장 쪽으로 보았을 때 좌측에 해당되는 종로 4가 쪽에 종묘를, 우측 지금의 사직공원이 있는 곳에 사직단을 세운 것이 '좌묘우사'의 원칙에 입각해서 배치한 사례이다.
그리고 조선시대 각 도의 행정 구역을 정할 때도 기준은 경복궁이 된다. 경복궁에서 남쪽을 바라보았을 때를 기준으로 좌도와 우도 혹은 동도와 서도가 나뉘어졌다. 그런데 그 중심에는 강이 있다. 경기도는 한강, 충청도는 금강, 경상도는 낙동강, 전라도는 영산강을 중심으로 좌, 우도를 설정했다. 그러나 강원도는 지형적 조건으로 인하여 강이 아닌 대관령을 기준으로 좌우도가 결정되었다. 즉, 대관령 동쪽을 강원 동도, 대관령 서쪽을 강원 서도로 나누었다. 한양 이북의 북쪽도 원리는 같다. 그 이유는 왕은 북쪽 하늘에 떠 있는 북극성에 비유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해도 쪽에서 왕이 거주하는 궁궐을 바라볼 때 왼쪽을 황해좌도라고 불렀고, 오른쪽을 황해우도라고 하였다. 평안도, 함경도도 같은 원리로 좌, 우도를 설정했다.
예를 들어, 서양식 사고로는 전라남도 해남이 왼쪽에 위치하고, 여수가 오른쪽에 위치한다. 하지만 우리의 사고는 해남이 오른쪽이고 여수가 왼쪽이다. 궁궐을 등지고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록에 '이순신은 류성룡의 천거로 정읍현감(종6품)에서 전라좌도수군절도사(정3품)로 승진한 뒤, 전라좌수영에 부임했다.'고 나온다. 이 처럼 좌우 개념만 바로 알아도 우리 문화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