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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식 선물', '미국 뇌물'

권영구 2013. 8. 10. 10:49

[사설] '한국식 선물', '미국 뇌물'

 

조선  입력 : 2013.08.10 03:01

한국 사회에서 오가는 선물이 '진짜 선물'일까. 혹시 뇌물을 선물인 듯 포장해 넌지시 건네고 뇌물인 줄 뻔히 알면서도 '이건 선물이니까 괜찮아' 하며 태연히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조셉 필 전 주한 미8군사령관이 한국 근무 시절 받은 선물이 문제가 돼 중장에서 소장으로 강등(降等) 전역했다는 미국발(發) 뉴스를 듣고 이렇게 자문자답(自問自答)해 본 공직자가 얼마나 될까. 재벌기업으로부터 30만달러(약 3억3000만원)와 2000만원짜리 고급 시계를 받고서도 의례적 취임 축하 선물인 줄 알았다는 전 국세청장 사건이 드러난 게 불과 얼마 전이라 더 그런 생각이 든다.

필 전 사령관은 1500달러(약 166만원)짜리 도금(鍍金)한 몽블랑 펜 세트와 2000달러(약 222만원) 상당의 가죽 가방을 한국인에게서 선물 받고 가족 중 한 명도 한국인에게서 현금 3000달러(약 333만원)를 받았다고 한다. 이 선물과 금품은 미국 정부에 의해 압수됐다. 이 '한국식 선물'이 오간 계기가 부임 축하였는지, 송별 잔치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법으로 보면 전 주한 미 고위 장성을 명예스럽지 않은 전역으로 몰아넣은 이 '한국식 선물'이 법을 어긴 것은 분명한 듯하다. 미국 '뇌물 및 이해충돌방지법'엔 공직자가 정부 급여 이외의 금품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징역 1년~5년 또는 벌금형으로 처벌하게 돼 있다. 미국 공직자 윤리 기준은 공무원과 그 가족은 한 번에 20달러 이하, 연간 최대 50달러 범위 안에서만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범위를 벗어난 선물은 신고하게 돼 있다. 필 전 사령관은 선물을 받고 나서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부터 문제가 됐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미국의 공직자 윤리 감시 체계다. 필 전 사령관은 한국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국방부 감사실, 연방수사국(FBI), 육군범죄수사대로 구성된 합동 조사팀의 조사를 받았다. 상식적으로 보아 그에게 이런 '한국식 선물'을 건넨 사람이 무슨 대가를 얻으려 했던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도 미국의 감시 체계는 엄격하고 예외 없이 작동됐다.

이 '한국식 선물'이 미국에서 일으킨 파동을 접하고 정부가 얼마 전 '부정 청탁 금지법'이란 걸 만들면서 '직무 관련성 없는 금품 수수'를 처벌하느냐 마느냐로 처음부터 끝까지 티격태격했던 우리 공직 사회의 윤리 감각이 먼저 떠오른다. 이대로 가면 제대로 된 나라는 요원(遼遠)하다는 씁쓸한 느낌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