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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인생 2모작’ 성공하려면…

권영구 2010. 1. 20. 11:15
[퇴장하는 베이비붐 세대] 은퇴 후 ‘인생 2모작’ 성공하려면…
[세계일보] 2009년 12월 31일(목) 
자녀 위한 지출 줄이고 자신에게 투자하라
은퇴자들 “먹고살기 바빠 노후자금 준비 못해”
사회 봉사 등 알찬 ‘제2의 인생’ 설계 바람직


베이비붐 세대에게 은퇴 후 생활 설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고민거리다. 이들은 가족을 위해 생애 대부분을 희생한 탓에 물리적·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 은퇴를 코앞에 둔 시점에 인생 후반기를 준비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베이비붐 세대들이 그동안 축적해온 인생 경험을 사회에 베풂과 동시에 자신만을 위한 투자 계획을 세우면 지금이라도 충분히 멋진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달팽이건설 박영규 대표(왼쪽)가 서울 신림동 한 상가 건물에서 실내 공사를 하던 중 직원들과 잠시 휴식하고 있다.
◆인생 2모작, 뜻있는 일을 하라= “인생의 가장 큰 죄악은 자신의 능력을 사장시키는 것입니다. 뜻있는 ‘인생 2모작’을 위해 준비하고 또 준비하세요.”

건설협동공동체 달팽이건설 박영규(51) 대표는 한때 잘나가는 대기업 임원이었다. 베이비붐 세대인 박 대표는 22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항상 은퇴 후를 걱정했다.

2007년 직장을 그만둔 그는 사회에 자신의 경험을 환원할 생각을 하던 중 우연히 희망제작소 주관 ‘행복설계 아카데미’를 알게 됐다. ‘해피 시니어’라고 불리는 이 제도는 2006년부터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퇴직자들에게 민간 비영리기관(NPO)을 소개, 공익적 활동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2008년 8월 주로 저소득층 기술자들이 참여해 운영되는 달팽이건설의 창업에 기여했다. 달팽이건설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를 통해 건설 노동자의 고용 안정과 삶의 질 개선을 실현하고자 만들어진 회사다. 그동안 노동자들이 경영을 잘 몰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박 대표의 경영관리 능력이 회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달팽이건설은 10% 이상 이익을 남기지 않고 연말에 이익이 나면 66%를 기부한다. 숙련된 기술과 책임감 있는 시공으로 입소문이 나 2008년 2건이던 공사가 2009년 40건으로 늘었다.

박 대표는 대기업에 근무할 때에 비해 턱없이 적은 월급을 받고 있지만 그동안 저축해둔 돈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봉사하면서 살겠다는 평소 신념을 실천할 수 있어 무척 즐겁다”며 “회사가 안정되면 또 다른 봉사활동을 위해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박 대표의 경우처럼 퇴직 후 사회봉사 등 뜻있는 일을 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은퇴 이후 생활에서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은퇴 베이비붐 세대들을 사회봉사활동에 연결시켜주는 비영리단체수는 약 2만3000개다. 사회적 기업, 민간 연구소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들의 경험을 사회 발전에 이용하려 하고 있다.

이재흥 희망제작소 연구원은 “베이비붐 세대들의 은퇴는 우리 사회가 질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며 “은퇴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산 인생이라면 인생 후반기에 자신이 직접 인생을 설계하고 남까지 도울 수 있는 일을 한다면 사회적으로도 커다란 축복”이라고 말했다.

◆자녀 ‘올인’은 접고 노후에 투자하라= 대기업 임원인 김모(52)씨는 정년 후를 생각하면 스트레스만 쌓인다. 은퇴 뒤 김씨가 믿을 것은 집 한 채밖에 없기 때문이다. 취직 후 자녀 교육과 부모 모시는 데 전력을 쏟은 탓에 수중에 재산이 거의 없다. 퇴직 후 집을 담보로 생활비를 받는 역모기지론을 이용할 생각도 했지만 자녀가 있어 포기했다. 김씨는 “당장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노후자금 준비는 전혀 하지 못했다”며 “은퇴 후 국민연금 외에 소득이 없어 어떻게 살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녀들을 위한 지출은 줄이고 지금이라도 자신에게 투자해 ‘실탄’을 마련하라고 충고한다. 역모기지론이나 부동산 현금화를 통해 노후를 대비하라는 것이다.

주택 자산 외에 금융 자산에 여유가 없는 경우라면 시중은행들이 내놓은 역모기지론을 이용할 만하다. 하지만 2007년 도입된 역모기지론의 경우 국내 가입자는 겨우 2000여명이다. 1년에 약 11만명이 가입하는 미국과 달리 국내 은퇴자들은 아직도 자녀들에게 집 한 채라도 물려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셈이다.

일단 현금을 마련한 후 금융상품으로 노후를 설계하는 방법도 있다. 수익형 부동산이 아닌 거주 목적의 부동산은 면적을 줄여서라도 저렴한 곳으로 옮겨 현금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은퇴를 앞둔 50세 이후 세대는 채권이나 적금 등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때 고려해야 할 게 ‘100-현재 연령 원칙’(100세에서 본인 나이를 뺀 만큼 주식형 상품에 투자)이다. 52세인 직장인이면 48%를 주식형 상품에 넣고 나머지 52%는 예·적금 상품에 투자하는 게 좋다.

특별기획취재팀=염호상 팀장, 안용성·엄형준·조민중 기자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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