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다시 생각하라

권영구 2009. 10. 11. 17:03

경험에 집착마라…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입력 : 2009.10.10 03:15

다시 생각하라
시드니 핀켈스타인 외 지음|최완규 옮김|옥당|304쪽|1만2900원

미국 국토보안부 통제센터 매튜 브로데릭 국장은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이 분야 베테랑이다. 2005년 8월 미국 남동부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상륙했을 때 그는 카트리나가 다른 허리케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섣불리 예단해 버렸다. 그러나 단 3일 동안 카트리나는 2만명의 생사를 갈랐다. 브로데릭 국장은 뒤에 "CNN을 통해 뉴올리언스의 유명 관광지 프렌치 쿼터에서 파티를 열고 있는 사람들 모습을 접하고 위기가 다 지나간 줄 알았다"고 의회에서 증언했다.

경험이 풍부할수록 실수의 여지가 줄어들 것 같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충분한 경험이 오히려 의사결정을 방해하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패턴 인식' 과정의 특수성 탓이다. 패턴 인식 과정은 주어진 정보를 비교하고 알 수 없는 공백 부분은 추론으로 메우게 되는데 그 때문에 오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경험이 풍부하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을 경우, 과거의 유사한 경험이 현재의 상황과 들어맞지 않는데도 전에 경험한 패턴을 현재 상황에 꿰맞추려 들기 때문이다. 뉴올리언스를 쑥대밭으로 만든 카트리나의 파괴력을 과소평가한 브로데릭 국장은 전형적인 패턴 인식의 오류에 빠졌던 것이다.

2005년 상륙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폐허로 변한 뉴올리언스 시내. 약탈 후 불타고 있는 스포츠용품 상점 앞에 소방관들이 서 있다./AP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는 또 다른 요인은 '감정적 꼬리표 달기'이다. 1980년대 초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컴퓨터 업체의 하나였던 왕 컴퓨터 대표 왕안은 IBM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개인용 컴퓨터에 대한 수요가 막 생겨났을 무렵 IBM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PC를 시장에 선보였다. 업계 전체가 IBM 호환기종을 대세로 받아들일 때 왕안은 자사 개발 운영체제(OS)를 고집하다 사업 전체를 망쳐버렸다. 감정이 의사결정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왕안의 경우 상식을 벗어난 호불호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미국 다트머스대학 터크 경영대학원 교수인 시드니 핀켈스타인과 동료 저자들은 이외에도 오도성(誤導性) 경험, 오도성 예단, 부적절한 이기심, 부적절한 애착 등이 위대한 리더들을 치명적 실책으로 이끈 사례들을 들며 두뇌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노하우를 제시하고 있다.

오도성 경험이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현재 평가하고 있는 상황과 유사하다고 믿는 기억이다. 즉, 친숙하지 않은 정보가 친숙하게 느껴질 때를 말한다. 게토레이를 성공적으로 인수·합병한 기억을 갖고 있는 퀘이커사의 CEO 윌리엄 스미스버그는 1994년 탄산음료 제조사인 스내플을 인수해 게토레이의 성공을 재현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두 사업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차이를 보지 못한 채 두 사업이 유사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배급업체들과의 독특한 관계, 특이한 기업문화 등의 차이로부터 눈을 돌려버린 것이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인간의 이기심이 끼치는 영향도 상상 이상이다. 2001년 파산보호 신청을 하고 몰락한 엔론 사태가 대표적이다. 엔론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앤드루 패스토를 비롯한 회사 중역들은 엔론의 주주와 직원, 연금 수령자들, 고객, 하청업체들을 희생시켜가며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던 것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이 경영진 수뇌부가 모두 반대하던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다가 경영 실적의 커다란 훼손과 엄청난 금전적 손해를 감수해야 했던 전례는 부적절한 애착의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프레스가 '2009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이 책은 경영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필진이어선지 걸리는 부분이 거의 없이 술술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