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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너무 별을 쳐다보아
이토록 분주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시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시(詩)라는 말을 '사원의 언어'(言+寺)로 이해를 하기도 합니다. 시장의 언어가 아니라 사원의 언어라는 것인데, 시장의 언어가 시끄러움이라면 사원의 언어는 침묵이겠지요. 시끄러움과 요란함에서 벗어나 조용한 침묵의 숲으로 드는 것, 그것이 시를 읽는 의미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어쩌면 시라는 것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인가를 길고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대번 시의 대상이 되는 것의 본질에 닿아 그 본질을 노래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점에서 시를 읽는다는 것은 마음이 맑아지는 일이지 싶습니다. 둔했던 마음, 무뎌지고 헝클어졌던 마음을 맑게 정돈하는 일이지요. 어수선하고 번잡했던 일상에 중심을 회복하는 일일 것입니다. 분주했던 발걸음을 멈추고서 내 주변과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일일 테고요. 시를 읽는 것을 별난 사람들이 갖는 고상한 취미나 사춘기 청소년들의 전유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시를 읽어 무뎌졌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세상을 따뜻하고 의미 있게 볼 수 있는 맑은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철이나 버스에서 시를 읽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사인 시인의 최근 시집인 <가만히 좋아하는>을 읽다가 만나게 된, 이성선 시인이 쓴 '별을 보며'라는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이 됩니다.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고작 네 줄, 어려울 것도 없는 짤막한 글을 읽는데 왜 그리 눈물겹던지요.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이 무엇인지를 나직한 목소리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마음까지를 우울하게 만드는 심한 황사나 스모그를 짜증 섞인 눈으로 바라보거나, 계획한 일정이나 행사에 지장이 없을까를 확인하기 위해 하늘을 바라볼 뿐, 나를 성찰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어느 새 우리들은 땅의 일도 벅차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아예 잊고 살아가곤 합니다. 시인은 하늘을 바라보기에는 부끄러울 뿐인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더러워진 마음을 모르거나 감추지 않습니다. 행여 더럽혀진 마음으로 별과 하늘을 쳐다보아 별과 하늘이 자기 자신 때문에 더럽혀질까 조심을 합니다. 마음이 맑은 이만이 가질 수 있는 티 없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 우리 다 잃어버렸지 싶어서, 내 눈길 한 번에 세상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지 우린 너무도 모르며 살고 있지 싶어서 문득 부끄럽고 마음이 떨립니다. 2007.1.27ⓒ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