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밭 새벽편지(행복한 家)

[일상스토리]큰아버지의 불행은 녹슨 총

권영구 2026. 7. 1. 10:55

나의 큰아버님은 강원도 화천에 사신다.

추석 전후해서 일 년에 한 차례 정도 다녀오는데 언제 뵈어도 건강한 모습이셨다.

그런데 얼마 전 큰아버님 댁에 다녀 왔을 때는

그 몇 달 전에 마를 캐다 넘어지셔서 다리가 성치 않아 그런지

한 해 사이에 많이 늙어 보이셨다.

 

산안개가 마당까지 허옇게 드리워진 새벽.

여름인데도 공기가 싸늘해 새벽잠을 설치고 깨어나 있었다.

밖에서 인기척이 나서 귀를 기울여 보니

큰아버님이 작은아버님을 부축해서 화장실에 데려가시는 모양이었다.

일흔이 훨씬 넘으신 큰아버님은

20년 묵은 중풍 환자인 작은아버님을 보살피고 계신다.

신발 신기는 소리가 나더니 질질 발 끄는 소리가 나고

소변을 다 봄 동안 지켜 서 있다가 다시 데려오시며 물어보신다.

 

"춥지 않니?"

"툽긴? 괜탄아. 괜탄아."

 

환자의 발음이라 투박하기도 하지만 자상한 형님의 말씀에 비해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동생의 대답이다.

언젠가 파도처럼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앤서니 퀸의 눈을 본 적이 있다.

나의 큰아버님 눈에서는 말라 갈라진 논바닥을 볼 수 있다.

불행은 마치 예약이나 되어 있는 듯이 평생 그분을 따라다녔다.

그러나 큰아버님이 원망하거나 탄식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눔아, 그건 민들레야."

 

고들빼긴 줄 알고 한 움큼 풀을 뜯은 손을 작대기로 내리치시며 껄껄 웃으시던 모습,

빠가사리에게 안 쏘이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실 때나

투망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실 때의 진지함을 잊을 수 없다.

큰아버님께 불행은 녹슨 총이나 나무칼에 지나지 않았다.

70년이 넘는 불행도 그분에게서 농담과 웃음을 빼앗지는 못했다.

 

"이것들이 여간 깊이 박히는 게 아냐. 이거 캐라고 아주 죽을 똥을 쌌어."

 

산마를 한 보따리 안겨주시며 헤어짐을 섭섭해 하시는 큰아버님은

차가 골목을 다 빠져나올 때까지 손을 흔들고 서 계셨다.

 

 

- 김창완 산문집 <이제야 보이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