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계 이황이 손자에게 보낸 편지 -
"듣자하니, 젖을 먹일 여종 학덕이가 태어난 지 서너 달이 된 자기 아이를 버려두고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하더구나. 이는 그 여인의 아이를 죽이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남의 자식을 죽여서 자기의 자식을 살리는 것은 매우 옳지 못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서울 집에도 젖을 먹일 여종이 필시 있을 것이다. 대여섯 달 동안 함께 키우게 하다가 8,9월이 되기를 기다려 올려 보낸다면, 그 여종의 아이도 죽을 먹여서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두 아이를 모두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없어서 꼭 지금 서울로 올려 보내야 한다면, 차라리 자기 아이를 데리고 올라가서 두 아이를 함께 키우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자기 아이를 버려두고 가게 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차마 하지 못할 노릇이니, 아주 잘못된 일이다.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여라."
퇴계 이황이 1950년 4월 5일에 손자 이안도에게 보낸 편지이다. 퇴계는 맏손자 안도를 사랑하여 많은 편지를 보냈다. 이안도는 딸 둘을 두고 있다가 1568년 3월에 아들 창양을 얻게 된다. 그런데 창양을 낳은 권씨가 다시 딸을 낳고는 그만 병이 나서 젖이 나오지 않아 창양이 죽을 지경이 되었다.
이안도는 퇴계에게 알리지 않고, 퇴계의 집에서 아이를 낳아 젖을 먹이고 있던 종을 서울로 데려가려고 계획했다. 이 소식을 들은 퇴계는 창양이 더없이 소중한 증손자이기는 하지만 남의 아들을 죽게 하면서까지 살릴 수는 없으니 부디 계획을 바꾸라고 권하고 있다.
갓난아이가 있는 여종을 불러 자신의 아기에게 젖을 물리게 하여 정작 여종 자신의 아기를 죽게 만드는 일이 당시 조선 사회에서 흔히 있었다.
자기 가족의 행복과 건강만 중시하면 물건 취급을 받던 노비와 그 아이의 생명은 등한시하기 쉽다. 퇴계는 자신의 손자와 증손자를 아꼈지만, 자기 자식을 죽게 만드는 반인륜을 좌시할 수 없었다.
퇴계는 평생 사직 상소를 53회 이상 올렸다. 조정에서는 얼마나 퇴계를 원했는지를 알 수 있다.
나라에서 봉록을 받는 벼슬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직업이다. 그렇지만 퇴계는 자신이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직을 요청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권력과 명예를 탐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 퇴계 선생 사직서를 보면 시원해지고 욕심 없는 사람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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