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독서MBA 뉴스레터 147] ...죽음의 에티켓

권영구 2020. 1. 30. 16:44


죽음은 이렇게 올 겁니다. 서른부터 심장의 힘이 점점 약해집니다. 마흔부터는 근육의 탄력성을 잃습니다. 쉰부터 뼈의 밀도가 낮아집니다. 예순부터는 평균적으로 치아의 3분의 1이 빠집니다. 일흔부터는 두개골 속의 뇌가 줄어듭니다. 당신은 낡아질 대로 낡아지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체계는 부서집니다. 죽음 역시 천천히 그와 동시에 충분히 빨리, 그렇게 진행됩니다. 삶에 갑자기 너무 짧은 동시에 너무 긴 시간이 주어집니다. 인생이 사그라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고, 생활을 이루는 모든 행위를 더 이상 차근차근 수행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돈을 관리할 수 있었고 약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시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씻고 청소하고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가 없습니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당신이 일생 동안 무엇이었던 간에 더 이상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일생 동안 맡았던 역할을 내려놓게 합니다. 배우자로서 상대를 돌보며 살았는데 이제 요양인이 필요합니다. 보호자로 살았지만 이젠 보호를 받아야 할 처지입니다. 죽음은 인간을 벌거벗깁니다. 내가 누구인지 다 드러날 때까지 말입니다.

죽어가는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감추고 드러내지 않았던 감정들과 생각을 털어놓는 게 쉽다고 합니다. 가면을 훌훌 벗고 마음껏 자기 자신일 수 있는 기회. 사심 없이 자신을 맡기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죠. 상대가 자신의 과거를 모르고 오로지 현재만을 안다는 것이 그들을 해방시키는 모양입니다. 그들은 감추고 드러내지 않던 감정들과 생각을 털어놓습니다. 호스피스의 봉사자들도 이런 특별한 관계를 체험합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섬뜩한 진솔함을 말입니다. 마음껏 속마음을 말할 수 있는 기회. 아름답고도 슬픈 순간입니다. 죽을병에 걸린 사람이 마지막 시간에, 전혀 알지 못하는 남이 돌봐 주는 그런 순간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죽음은 나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당신은 노인 아니면 젊은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노인을 선호하죠. 독일에서 죽어가는 이들의 절반은 80세 이상입니다. 그중의 반은 긴 투병 끝에 죽습니다. 당신의 죽음은 질이 나쁜 죽음은 아닙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준비해 두지 않는다면 죽음이 임박한 나 자신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도 나를 돌봐 줘야 하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의사나 장의사나 운구자나 가족이나 친구들이 당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면 그들은 해 줄 수가 없습니다.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평범한 것이 아니면 글로 적어 두세요. 시신을 학문의 발전을 위해 기부하고 싶다면, 해부실에 전화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호수에 뿌려지기를 원한다면 서면으로 적어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서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당신의 소원에 구속력이 생깁니다. 유언장의 한 부분에 적어 놓는 내용은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이 죽고 유언장을 열어 읽게 되는 때는 대개 이미 장례절차가 끝난 다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확실히 하고 싶다면 두 가지를 다 해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그리고 서면으로 적어 두기. 그리고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장례식은 사실 당신을 위한 게 아니고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한 의식입니다.

당신이 인생에서 행운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그리고 당신이 인생을 사랑했었다면,
그만큼 많이 모일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수는 어떤 공간이라도 꽉 채웁니다.
어떤 친구는 당신을 친구로 여기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래서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잘 알았거나 잘 알지 못했거나
조금만 알았어도 어쩌면 중요한 노트에 적어 놓았을 겁니다.
'장례식에 갈 것. 장례식에는 꼭 갈 것'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