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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아웃사이더' 외교부

권영구 2018. 3. 15. 10:21

[기자의 시각] '아웃사이더' 외교부


입력 : 2018.03.15 03:12

안준용 정치부 기자
안준용 정치부 기자
지난 13일 오후 2시 30분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강경화 외교장관이 15일 워싱턴을 방문해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기자와 별도로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 외교장관이 만나 남북, 미·북 정상회담 관련 내용을 긴밀히 협의하면 '외교부 소외' 논란이 좀 사그라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불과 9시간여 뒤 틸러슨 장관이 해임됐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외교부는 심야 회의를 연 뒤 밤 11시 30분쯤 "한·미 소통에는 이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당국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외교부는 강 장관의 방미(訪美) 취소를 검토하다 14일 회의 끝에 예정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새 국무장관 지명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 면담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강 장관의 방미를 둘러싼 만 하루 동안의 혼선은 최근 겉도는 외교부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북핵(北核)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미, 동북아 외교전이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북핵 주무 부처인 외교부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북·대미 특사단에 외교부 인사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대미 특사단이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나 미·북 정상회담을 발표할 때, 강 장관은 동남아를 순방하고 있었다. "김정은의 제안을 아는 사람은 대북 특사단 5명과 대통령뿐"이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언급은 '외교부 패싱'을 공개적으로 확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뒤늦게 한·미 외교장관 회담으로 만회해보려 했으나 이마저도 불발됐다.

외교부의 존재감이 이렇게 낮았던 적이 또 있었을까. 최근 북핵·대미 외교뿐 아니라 사드 배치, 위안부 문제 등에서도 청와대가 모든 것을 틀어쥐고 외교부는 뒷수습 역할에 머무는 모습이 되풀이됐다.

더 큰 문제는 외교관들이 이런 현상을 돌파하려는 의지조차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부들은 "큰집(청와대)에서 정보를 공유 안 하니 어찌하겠느냐"고 하고, 젊은 외교관들 사이에선 "워라벨(일·가정 양립)이 대세이니 이럴 때 좀 쉬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한 원로 외교관은 "노무현 정부 때는 이른바 '자주파'와 '동맹파'가 현안을 놓고 싸우며 목소리라도 냈는 데, 지금은 모두가 무기력하게 청와대만 쳐다보고 있다"고 했다.

급변하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파악하며 '플랜B'를 마련하고 돌발 변수에 대비하는 것은 훈련된 외교관의 몫이다. 외교관이 제 목소리를 못 내면 상대국 파트너로부터 신뢰를 잃어 시야와 운신(運身)의 폭이 더 좁아진다. 역할도 의지도 없는 외교부가 훗날 돌이킬 수 없는 외교 참사를 초래할까 걱정스럽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14/20180314034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