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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最强 통상팀 왜 사라졌나?

권영구 2018. 2. 23. 10:24

[데스크에서] 最强 통상팀 왜 사라졌나?

입력 : 2018.02.23 03:14

김태근 경제부 차장
김태근 경제부 차장
#1. 11년 전 한·미(韓美) FTA 협상 타결 직전 협상장인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일주일 동안 협상장을 오가는 공무원들 쫓아다니며 취재했다. 당시 협상장에선 조금만 삐끗하면 자리를 박차는 양측 기 싸움이 밤낮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관료들 말에는 힘이 있었다. "USTR(미국 무역대표부) 애들 별거 아냐. 글쎄 나랑 협상하는 분과에 아이비리그 출신이 한 명도 없더라고. 내가 하버드 얘기 좀 해줬지." "초조한 건 저쪽이지. (우리가) 버티면 별 수 있겠어." 그해 봄 결전을 치른 관료들은 유럽연합과의 FTA 협상까지 주도하며 역량을 키웠다.

#2. "누구랑 붙어도 자신 있다"던 통상 관료들은 이후 하나 둘 자리를 떴다. 누구는 삼성전자 임원으로, 누구는 대형 로펌으로 갔다. 부처에 남은 이들도 통상에서 손을 떼고 싶어했다. 외교부나 산업부나 기획재정부나 잘나간다는 관료 중에 통상 걱정하는 이가 없었다. 위에서 관심이 없으니 당연했다. 미국, 유럽과 맞짱 뜨던 실무자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데 채 5년도 걸리지 않았다.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되기 일주일 전인 2007년 3월26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USTR) 부대표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3. 5년 전 한·중(韓中) FTA 협상이 한창일 때다. 보통 FTA 협상은 경제 부처 공무원들이 분야별로 맡아 협상단을 꾸린다. 금융은 금융위원회, 제조업은 산업부, 농산물은 농식품부 공무원이 맡는 식이다. 협상에 참여한 고위 관료가 한숨부터 쉬었다. "미국이나 유럽과 FTA 할 때는 각 부처가 에이스를 내놨는데, 이번엔…." 통상교섭본부가 막 외교부에서 떨어져 나가 산업부로 옮긴 무렵이다.

#4. 작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이 첫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할 즈음이다. 통상 전문가 선배를 만났다. 그는 민(民)과 관(官)에서 20년 가까이 경력을 쌓은 사람이다. 통상 얘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정상회담에서 한·미 FTA 재협상이 반드시 거론될 텐데 정부에서 따로 준비한다는 말이 없네. 이런 적이 없었는데…." 통상교섭본부는 작년 7월 미국이 한·미 FTA 재협상을 공식 선언한 이후에야 뒤늦게 움직였다.

미국의 전방위 통상 압력에 무력한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와 협상 경험이라는 '지적(知的) 자산'을 기준으로 할 때 우리가 선진국에 밀리지 않는 실력을 축적했던 분야 중 하 나가 바로 통상이다. 하지만 5년짜리 정부의 근시안적 행보가 이어지면서 실력 유지에 실패하고 최강팀을 와해시켰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정부 부처와 민간에 흩어져 있는 자원을 끌어모아 다시 '최강팀'을 구성하자. 한·미 FTA 협상 때 활약했던 전직 관료가 말했다. "실력이 없어 당하면 억울하지나 않지요." 이 말에 통상 전문가들의 요즘 심정이 담겨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22/20180222033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