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프란치스코 교황 탄생과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
조선 입력 : 2013.03.14 22:47
전 세계 12억 가톨릭 신자를 이끌 266대 교황에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76) 추기경이 선출됐다. 비(非)유럽 지역에서 가톨릭 교황이 나온 것은 1282년 만이다. 남미 가톨릭 신자가 세계 가톨릭 신자의 41.3%인 4억8000만 명에 달해 언젠가는 이곳 출신 교황이 나오리라고 내다봤지만 이렇게 빨리 출현한 것은 예상을 넘어선 일이다. 새 교황은 즉위명(名)으로 '프란치스코'를 선택했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함께하며 청빈(淸貧)과 겸손으로 가톨릭 교회를 새롭게 변화시켰던 13세기 성자(聖者)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가톨릭 교회의 위대함은 시대 변화에 더딘 듯 보이면서도 어느 순간 시대 변화를 적극 수용해 시대와 함께 나아간다는 점이다. 최근 가톨릭 교회의 권위는 바티칸의 권력 암투와 비리 의혹, 영국·미국 사제들의 성추행 스캔들 등으로 전에 없이 떨어졌다. 바티칸이 처음으로 제3세계 출신 교황을 선출한 것은 교회 내부에서 과감한 변화와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벌써부터 프란치스코 교황 시대가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교회일치운동의 길을 열었던 요한 23세, 폴란드 출신으로서 20세기에서 21세기로 전환기 교회를 이끌었던 요한 바오로 2세 시대와 맞먹는 교회 쇄신 시대가 되리라는 성급한 기대도 나오고 있다.
새 교황은 2001년 추기경이 된 후 화려한 추기경 관저를 마다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작은 아파트에서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며, 음식을 직접 만들고 낡은 옷을 수선해 입고 출퇴근할 때는 털털거리는 시내버스를 즐겨 이용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라는 즉위명이 어울리는 청빈과 겸손과 사랑의 사목(司牧)답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작년 사제 서품식에서 젊은 사제들에게 "예수님은 우리에게 밖으로 나가서 형제들과 교류하고 나누라고 가르치셨다"며 "영적으로뿐 아니라 몸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라"고 당부했다. 남미는 세계 어느 곳보다 빈부 격차가 심해 교회가 사회 모순 해결에 직접 나서야 한다는 해방(解放)신학이 탄생한 곳이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념에 앞서 사랑의 실천을 택했고 스스로 '빈자(貧者)의 아버지'를 자처하며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을 찾아가 그들과 하나가 됐다.
종교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호소력을 갖는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종교는 낮은 목소리를 내도 울림이 크고, 그 울림이 사회를 바꾼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을 사랑으로 껴안기보다 정치인을 닮은 거친 목소리로 이념과 사회변혁만을 외치는 종교의 목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진다. 종교가 성전(聖殿)을 높이 올릴수록 가난하고 병들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과 멀어진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이은 부에노스아이레스 프란치스코의 교황 취임 소식을 접하며 가톨릭 교회의 영원한 생명력의 근원을 생각하고 종교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거듭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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