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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계좌에 돈 넣을테니…" 신종 보이스피싱 기승

권영구 2011. 9. 17. 08:55

 

"당신 계좌에 돈 넣을테니…" 신종 보이스피싱 기승

한국일보 | 입력 2011.09.17 02:37 |

 

 

 

개인 금융정보 빼내 카드론 대출받아 가로채
간편대출 허점 악용… 수천만원 이상씩 피해
지난달 보이스피싱 916 건 "대부분 카드론 탓"

 

지난달 30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사는 자영업자 김모(55)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수사기관 직원이라고 밝힌 한 남자는 "불법 자금 유통 경로를 추적 중이다. 당신 통장에 문제가 있으니 협조해 달라"고 말했다. "국가안전보안코드를 교체해야 한다"는 말에 김씨는 신용카드 번호, 카드 뒷면 서명란의 CVV(Card Verification Value)번호, 계좌번호 등 자신의 금융정보를 알려줬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당신 계좌에 돈을 넣을 테니 다시 우리 계좌로 이체하라"고 지시했고 김씨는 전화 직후 통장 잔액이 늘어난 것을 확인하고 의심 없이 이를 따랐다. 김씨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전화를 끊은 후였다. 확인해 보니 통장에 들어왔던 돈은 자신의 명의로 신청된 신용카드 대출, 즉 카드론이었다. 5개의 신용카드에서 각각 600만~1,000만원이 대출된 것을 모르고 자신의 예금까지 합쳐 범인의 계좌로 이체했던 것이다. 김씨는 1시간의 통화로 8,000만원을 날렸다.

피해자의 금융정보를 빼내 본인 계좌로 카드론을 받게 한 후 입금된 돈을 범인의 계좌로 이체시키는 신종 전화금융사기(보이스 피싱)가 빈발하고 있다. 서울 송파경찰서 관계자는 16일 "추석을 앞둔 8월 말부터 이런 사기 사건이 하루 한 건 이상 신고되고 있다"고 밝혔다. 카드회사에 접수된 피해 사례도 급격히 늘었다. 한 카드회사 관계자는 "8월 이후 보이스 피싱 피해 접수 건수가 이전에 비해 10배는 늘었다"고 말했다.

8월 한 달 경찰에 접수된 보이스 피싱 피해 사례는 916건, 피해액은 102억원에 달한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한 달 평균 584건, 61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던 것에 비해 크게 늘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사례 중 상당수가 카드론 보이스 피싱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카드론 보이스 피싱이 최근 급증하는 것은 서류 심사 없이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쉽고 빠르게 대출할 수 있는 카드론의 특성을 범인들이 악용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카드회사가 몇 가지의 금융정보만 확인하면 신청자를 본인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범인들이 피해자 명의로 대출을 쉽게 신청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카드회사들이 내세우는 '365일 24시간 대출', '무방문 무서류', '신청 즉시 입금' 등의 간편함은 양날의 칼이었던 셈이다.

카드론 보이스 피싱은 다른 보이스 피싱에 비해 피해액도 큰 편이다. 한 사람이 하나의 신용카드로 최고 3,0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고, 동시에 여러 개의 대출을 신청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피해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하는 상황이다. 김계환 변호사는 "만약 피해자가 카드회사를 상대로 소송한다면 쌍방과실로 판결 날 것"이라고 말했지만, 카드회사 측은 "스스로 금융 정보를 알린 피해자의 과실"이라고 반박했다. 금융감독원 전화금융사기피해구제준비반 김석 팀장은 "개인이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수상한 전화에 응대하지 말고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최근 보이스 피싱은 끊임 없이 진화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