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알기

[3·11 일본 대지진] 어느 도쿄 직장인의 힘겨운 하루하루

권영구 2011. 3. 28. 08:12

 

[3·11 일본 대지진] "처음 겪는 트리플 재난(지진·쓰나미·원전사고)… 일본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어느 도쿄 직장인의 힘겨운 하루하루
다른 지역의 옛 상사가 2L들이 생수 9병 보내줘 하루 1병씩 아껴 먹어
방사성 물질 검출 이후 보이지 않는 것의 두려움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돼

조선일보 | 도쿄 | 입력 2011.03.28 03:13 | 수정 2011.03.28 03:26

 

 

일본 화장품 회사 가네보의 '홍보·브랜드 그룹' 사원인 에구치 기쿠에(江口貴久江·41)씨는 "태어나서 이런 불안감을 느낀 것은 요즘이 처음"이라고 했다. 3·11 대지진과 쓰나미의 충격을 극복하기도 어려운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까지 이어지면서 방사성 물질에 대한 공포로 먹고 마시는 일까지 힘들어진 이후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에구치씨는 "이번 일은 세계 어디서도 겪어보지 못한 트리플(지진·쓰나미·원전사고) 재난"이라면서 "요즘 '일본이라는 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 [조선일보]도쿄로 직장을 다니는 에구치 기쿠에씨. /신정록 특파원 jrshin@chosun.com

 

에구치씨는 대지진이 일어나던 지난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도쿄 (東京)도 미나토(港)구 토라노몬(虎ノ門)에 있는 본사 건물 21층 사무실에 있었다. 일본에 살면 누구나 지진에 익숙해지기 마련이지만, 이전에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엄청난 요동이 2분가량 계속됐다. 마치 건물이 좌우로 1m 정도씩 휘청휘청 흔들리는 것 같았다. 직원들은 비명을 질렀고 화장품과 책들이 선반에서 떨어져 내렸다. 에구치씨는 "그때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에구치씨는 그날 요코하마(橫濱)에 있는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걸어가려면 하루가 걸릴지 이틀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도쿄 시내 롯폰기(六本木)에 있는 여동생 집에 가서 잤다. 요코하마에 돌아간 것은 다음 날 오전이었다. 집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냉장고 문이 열려 식료품들이 쏟아져나와 있었다. 그날 밤엔 계속되는 여진 때문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다음날 아침 TV를 켜고 나서 쓰나미의 참상을 알게 된 후 에구치씨는 온종일 TV를 보며 울고 또 울었다. 남편도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신문을 광고까지 한 줄도 빼지 않고 읽은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TV에서 쓰나미가 휩쓸고 간 후 폐허가 된 도시를 볼 때면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화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만큼 비현실적이었다는 것이다.

지진이 발생한 다음 주부턴 하루하루 출근길이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집에서 회사까지 보통 1시간 걸렸는데, 그 후부턴 2시간도 좋고 3시간도 좋았다. 전철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회사엔 교통편이 끊겨 집에 돌아가지 못한 사원들이 적지 않았다. 회사의 '재해대책위원회'가 이럴 때를 대비해 비축해놓은 컵라면과 빵, 물을 먹고 버텼다고 한다. 사원들은 모두 일은 했으나 제대로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불안한 생활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23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돗물 공포가 시작됐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영향으로 도쿄 및 수도권 지역 정수장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성 물질이 검출된 것이었다. 에구치씨는 그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두려움'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정년퇴임해 간사이(關西) 지역에 사는 옛 상사가 2L들이 생수 9병을 보내줬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인연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에구치씨 가족은 이 물을 하루에 한 병씩 아껴 먹고 있다. 다행히 24일부터 방사성 물질 검출량은 기준치 이하로 내려갔지만, 에구치씨는 "당분간 밥 짓는 물, 마시는 물은 생수로 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그래도 집에 아이가 없어서 아기를 키우는 집들에 비하면 불안감은 덜한 편"이라고 했다.

에구치씨는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인들이 가장 빨리 지원활동을 시작한 데 대해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몇년 전 전철역에서 일본인을 구하고 숨진 한국 인 남성(고 이수현씨)의 부모가 기부금을 냈다는 뉴스를 봤다"면서 "한국인들의 따뜻한 마음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구치씨는 "요즘 일본인들 마음속엔 세계 제1의 노력으로 사회를 재건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