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학교에 입학해 내가 해낸 최초의 성취는 구구단을 외워버린 일이었다.
이건 나한테 대단한 사건이었다. 동무들 누구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 외웠으나,
나는 엄청난 일을 해낸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세계의 숨은 비밀 하나를 알아버린 듯 내가 마구 마구 자랑스러웠다.
우리 반에서 마지막으로 길선이가 떠듬떠듬 구구단 암송을 마치자
"와아"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야아, 해냈다. 너도나도 해냈다. 우리가 해냈다. 구구단을 먹어부렸다."
아 그들은 책상을 두드리고 발을 구르고 환호성을 질렀다.
흐뭇한 얼굴로 우릴 바라보던 선생님이 어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씀하셨다.
"그려 그려 장하다이. 여러분은 시방 아홉 살에 구구단을 외워버린 큰일을 해부렀다.
구구단이 무엇이당가. 천 년이 넘도록 전승해 온 지혜로운 수리다, 이것이여,
느그들은 시방 그 장구한 역사를 이어내분 것이여. 자, 구구단의 끝이 어찌 되는가?"
"구구는 팔십일요!"
"그라제. 구구단의 끝은 81이제. 우리 겨레의 경전인 천부경도 81자고,
노자 선생의 도덕경도 81장이제. 구구단은 비밀한 머시기가 담긴 것이다, 이 말이제.
구구는 뭐시다?"
"팔십일요!"
"앞으로 여러분 인생길에 아홉 살을 아홉 번이나 살 기회 가 주어져 있제이.
창창하고 드높고 탁 트인 날들이 열려 있단 말이시.
그랑께 18살, 27살, 36살, 45살... 아홉을 한 번씩 더할 때마다 시방
구구단을 속에다 새겨 버린 오늘처럼,
평생을 품고 나갈 위대한 뭔가를 하나씩 해내 불자 이 말이시. 알겄능가!"
“예!"
"아홉 살에다 또 아홉 살 해내면서 81살, 그 너머까정 생생히 살다가 웃으며 안녕하자,
요것이 구구 팔십일의 속뜻이여. 어영부영 되는 대로 살다가 아차, 81살이 돼부렸네.
또 아홉을 더해부렸네. 아홉 살마다 위대한 뭐 하나도 못 새기고,
빛나는 참 하나도 못 깨치고, 어쩌까이... 후회함시 세 월이 어쩌네
인생이 어쩌네 요런 소리 하질 말더라고잉. 자 아, 구구는 뭣이여?"
"팔십일요!"
우리는 한목소리로 힘차게 외쳤다.
- 박노해 저, <눈물꽃소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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