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독이는 가을-
색색으로 물들어가는 가을을 맘껏 즐기기도 전에 하늘은 벌써 겨울을 준비한다.
앞산의 단풍은 봄꽃만큼이나 화려한데 입동과 소설이라니...
그래서일까? 이 늦은 가을날 나무들이 펼치는 색의 향연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것만 같다.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찬란한 아래로는 이미 땅으로
떨어져 지난날의 빛을 잃고 흙과 한 몸이 되어가는 밤의 풍경이 펼쳐진다.
위안이 있다면 이 밤은 끝이 아니라 순환하는 흐름의 한 장면이라는 것.
언제고 새로운 생명으로 그리고 더 깊은 붉음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만추에 우리가 빠지기 쉬운 감정은 바로 슬픔이다.
그리고 이 슬픔은 몸과 마음의 기운을 갉아먹는다.
일조량의 감소에 따른 내분비계의 변화 때문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두 장 밖에 남지 않은 달력과 치열했던 한 해의 생을 갈무리하는 자연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마음의 시선이 안으로 침잠한다.
슬픔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가을 들판에 피어오르는 연기, 숲길에 흩어져 있는 비둘기의 깃털, 벼락부자가 되어 자동차에 앉아 있는 연인의 가녀린 좁은 어깨, 줄타기 묘기에서 세 차례 떨어진 어릿광대‘처럼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 계절의 밥상은 슬픔에 빠지기 쉬운 마음을 다독이며 기운을 내라고 말하는 음식으로 차려본다.
- 달달한 겨울밤 -
달력은 무심하게 흘러가는 무한한 변화에 이름을 붙이고 매듭을 지어둔 것에 불과하지만,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는 12월이 되면 자연스레 생각이 많아진다.
동지가 가까워질수록 밤은 길어지고 자꾸만 지나간 일들이 떠올라 마음을 흔든다.
여러 이름을 붙여 떠들썩한 모임을 만들어보지만, 잊히지도 보낼 수도 없는 것이 시간인지라,
돌아오는 길은 더욱 어둡고 외롭다.
하지만 옛 사람들은 일 년 중 밤이 제일 긴 동짓날에 양의 기운이 시작된다고 했다.
물론 해의 길이가 조금 길어진다고 해도 추운 겨울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그래도 이 약속은 삭풍이 몰아치는 밤, 황야에서 발견한 작은 모닥불처럼 위로가 된다.
우리가 기대야 할 것은 결국 마음속 온기가 아니겠는가.
이 온기를 더할 수 있는 것에는 뭐가 있을까?
마음속 긴장의 끈을 풀어놓을 수 있는 좋은 사람들,
연대와 유머 그리고 따뜻한 음식일 것이다.
어느 깊은 밤, 눈이라도 내리면 더 좋을 그런 밤에 뜨끈한 방에 모여 마음을 전하는 대화와 소박하지만 정이 넘치는 그런 음식으로 서로의 마음속 온도를 높여보면 어떨까?
12월의 밥상은 일 년의 끝이란 긴장을 풀어주는 달달하고 부드러운 음식으로 차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