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같은 이야기

아니오신 듯 가시옵소서

권영구 2010. 11. 24. 11:57

□ 아니오신 듯 가시옵소서

 

 1.가족등산을 할 때마다 아내가 까만 비닐봉지를 한 개씩 등산가방 안에 넣어줍니다. 자기 쓰레기는 단 하나라도 산에 남기지 말고 그 비닐봉지에 담아 가지고 내려오라는 뜻이지요.
 2.전남 장성 축령산 골짜기에 잘 꾸며진 빈 집이 하나 있는데, 집 주인이 열쇠를 많이 만들어 지인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필요할 때면 언제든 와서 쉬었다 가라고 합니다. 단, 갈 때는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가지고 온 것 다시 다 가지고 갈 것! 문밖에 붙여 놓은 "아니오신 듯 가시옵소서."라는 글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3.언젠가 스님들이 사는 선방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찻상 하나에 아주 작은 책장과 방석과 벽에 붙은 그림 한 장뿐인 그 단촐한 방이 그렇게 넓어 보이더라구요.  4.어떤 분이 "45년을 도대체 뭐하며 살았는지 모르겠어. 도대체 남긴 것이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아무래도 인생 헛산 것 같아." 하며 한숨을 푸욱==3 쉬네요. 저는 빙긋 웃으며 "참 잘 사셨네요" 하고 말해주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래요. 이 세상에 살면서 남길 것은 '이름'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리 남긴다 해도 남겨지지도 않고요, 남기는 것이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될 뿐입니다.
 산에 쓰레기를 남기는 사람은 해충같은 사람이고요, 뒤끝이 깔끔하지 못한 사람은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거구요, 빈손으로 왔다가 잔뜩 남겨놓고 가면 그거 후손들이 처리하느라 애를 먹어요. 죽은 사람 소지품 불에 태우는 장면을 저는 어릴 적에 많이 봤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도 모르는 인생이 참 잘 산 인생입니다. 이 세상 잠시 왔다가 '아니오신 듯 가시는' 그런 삶이 쿨한 삶입니다. 그래도 꼭 남기고 싶다면 장기기증을 해서 내 몸 가운데 쓸만한것 재활용하게 하면 그것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최용우

 

□ 가을편지

초록의 바다 위에
엎질러 놓은
저 황홀한 불빛의
세례성사

솔숲 사이로 빛나는
한 그루 단풍나무처럼
그대는 내 앞에 계십니다

푸름 속에 혼자 붉어
가을 내내
눈길을 주게 되는
단풍나무 한 그루처럼

나도 자꾸
그대를 향해 있는
눈부신 가을 오후    ⓒ이해인(수녀) 외딴

 


 

  □ 큰일 아닙니다

학교에서 근무를 하는 분이 들려주는 학교 이야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놈들이 있고, 여전히 패싸움을 하면서 기싸움을 하는 놈들, 여전히 수업시간에 몰래 도망을 치는 땡땡이족들이 있고, 학교 앞에 세워놓은 차에 돌을 던져서 창문을 깨고 도망치는 품행제로 불량학생들... 왜 그랬냐고 물으면, "그냥요"(으이그~~내가 미쳐미쳐미쳐미쳐...그런 노래도 있더군요^^^) 여학생 꽁무니 따라다니다 걸려서 여학생 교실 복도에서 손들고 서 있는 남학생들(아이고 쪽팔리겠다!!!)
"큰일났어! 요즘 학생들 정말 왜 그런데? 큰일이야!"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큰일나기는 뭐가 큰일이야. 나 고등학교 다닐 때도 그랬는데 봐! 지금 큰 일 안 일어나고 잘 살잖여"
우리는 뭐, 고등학교 다닐 때 얌전한 학생들이었나요?  아무리 시치미를 떼어도 소용없어요. 우리들(어른들)이나 요즘 학생들이나 다른 거 하나도 없어요. 큰일 아닙니다. 그냥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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