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살아남기 위하여/자크 아탈리 지음·양영란 옮김/
불확실성 시대의 생존 7원칙을 주목하라

개인은 물론이고 기업이나 국가, 심지어 인류도 영속하는 존재가 아니다. 자연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지만 예기치 않은 위험에 의해 존재가 소멸하거나 비참한 처지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존하는 프랑스의 최고 지성인으로 일컬어지는 자크 아탈리의 최신작 ‘살아남기 위하여’는 개인 기업 국가 인류가 더욱 넓은 의미에서의 생존을 유지하고 발전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2009년 ‘위기 그리고 그 이후’를 통해 현 금융위기를 진단했던 저자는 이 책에서 세계경제의 전망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에 대해 논하고 있다. 따라서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고 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는 현시점에서 더욱 관심이 가는 내용이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낙관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지만 그리스 재정위기를 계기로 다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탈리는 이 책에서 좀 더 깊은 질문과 대응방안을 제시한다. 세계경제를 금융위기의 관점만이 아니라 인구 팽창, 기술진보, 에너지 및 생태계 위기, 정치·군사적 위기 등으로까지 넓혀서 조망하고 있다. 위기대응 방식도 임시방편적 조치가 아니라 더욱 근본적인 사고나 태도의 차원에서 논의한다. 따라서 이 책은 미래학과 경제학, 그리고 삶의 지혜를 다루는 철학과 심지어 경영학이 결합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탈리는 낙관적인 전망이 들어맞을 때조차도 앞으로 세계가 더욱 불안정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금융위기가 그럭저럭 수습되는 경우에도 세계경제는 장기간 저성장을 벗어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사실, 예를 들어 인구의 증가와 도시집중은 상수도와 식량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등 위협적인 요소가 증가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가치, 타인의 가치를 중시하되 변화를 받아들이고 주도할 자세와 기회를 활용할 준비를 갖추라고 주장하면서 자긍심의 원칙, 전력투구의 원칙, 감정이입의 원칙, 탄력성의 원칙, 창의성의 원칙, 유비쿼터스의 원칙, 혁명적 사고의 원칙 등 일곱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원칙들을 개인 기업 국가 및 인류 차원에서 적용한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변화를 받아들이고 주도한다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 개인과 기업이 정체성까지 바꿀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기업이 한 가지 사업에 집중하기보다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사업을 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지금까지 지켜오던 원칙을 혁명적으로 바꿀 수도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아탈리의 처방 가운데는 현실적으로 황당해 보이는 것들도 있다. 한 예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물속에 사는 방식을 고안하거나 삶의 터전으로 삼을 만한 다른 별을 찾아 우주로 떠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현실감이 매우 떨어지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탈리가 주장하는 것은 황당해 보이는 대안들까지 생각할 정도로 생각이 혁신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안들은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 맥락을 벗어나서 읽어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하지만 위험이 적고 우호적인 환경에서보다는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거친 환경에서 생존기술이 더욱 중요해지는 법이다. 따라서 인구증가, 자원고갈, 온난화 등 인류를 위협하는 요인들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높아진 데다 금융위기 여파로 세계경제가 온통 지뢰밭이 돼 버린 요즘은 이런 교훈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 입장에서도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 많다. 예컨대 아탈리는 시장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오늘의 세대에 필요한 복지를 다음 세대의 짐으로 떠맡기지 않으려면 안정적인 공공지출, 수입, 퇴직연금 등을 구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도한 복지 등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파산위기에 직면한 일부 유럽 국가와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명분으로 천문학적인 재정지출을 감행한 주요국들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정부 부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한 한국도 이 단순한 진리를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또 국가적 차원에서의 감정이입, 즉 다른 나라를 이해하는 능력을 강조하면서 일본 이란 영국 미국 등이 다른 나라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금융위기 이후 주요 20개국(G20)의 일원으로 올해 의장국까지 맡은 한국은 개발도상국 가운데 선진국에 가장 근접하게
성장한 덕에 선진국과 신흥국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따라서 상대 국가의 입장과 생각을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사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들은 단순하고 어쩌면 지금까지 숱하게 들었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한 대로 이 원칙들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다시 한 번 호흡을 가다듬는 자세로 읽어볼 만한 책이다.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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