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밭 새벽편지(행복한 家)

[일상스토리]중년의 더블데이트

권영구 2025. 1. 24. 11:02

주말 저녁 <개그 콘서트> 하우스 밴드의 클로징 음악이 없어도 기분이 우하향하는 시간,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일요일 저녁에 특히나 울릴 일 없는 내 전화, 이 시간이면 매우 이례적이다. 발신자를 보니 고등학교 동창 죽마고우. 지나간 초여름, 녀석의 배우자까지 동반하여 경기도 용인의 오토캠핑장에서 함께 하룻밤을 보낸 게 마지막 접선이다. 다시 짚어보니 올해가 아니라 작년이었다. 그 사이 드문드문 메신저나 몇 차례 주고받았을까.

 

-아이고, w야, 오랜만이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냐?

-Hoon아, 전화 한 번 한다 한다하는 게 이렇게 늦었다. 아, E 씨(녀석은 배우자를 그렇게 부른다)랑 얘기 나누다가 올해 보내기 전에 너희 내외랑 저녁 먹자고 해서 말이지. 어느 저녁이 좋으냐?

-그래, 너무 좋지. 다음다음 주 금요일 퇴근 후 저녁 이면 아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너희 내외는 어떠셔?

-좋네, 옆에 E씨도 괜찮다고 하신다. 너희 부부가 집 편하게 가려면 지난번처럼 사당역 근처가 좋잖아. 거 기 적당한 식당 찾아둘 테니까 그때 보자고.

 

  그렇게 계획된 더블데이트가 며칠 전 거행됐다. 약속 며칠 전에 식당 주소를 미리 알려왔다. 당일 오전엔 내게 '리마인더'도 보내온다.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곳인데 예약을 받지 않고 순서대로 손님을 받는단다. 자기 내외가 일이 일찍 끝날 터이니 미리 가서 테이블을 잡아두고 있겠단다. 세심하고 매끄러운 안내이자 유도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 내 친구가 이렇지, 하는 자긍심이 차오른다.

 

  퇴근한 아내와 서울역 사당행 4호선 승강장에서 만났다. W에게 우리 부부가 만나 출발했음을, 늦지 않을 것임을 메신저로 알렸다. 친구 내외도 이동 중이고 계획한 대로 먼저 들어가 기다리고 있겠다고 답신을 보내왔다. 어렵지 않게 골목을 파고들어 식당을 찾아냈다. 외경만 봐도 맛이 없을 수 없는 집이었다. 허름한 양옥 주택을 장사 용도로 개조했다. 차돌박이와 키조개 관자, 묵은지 김치 삼합을 주 메뉴로 판다. 간유리를 끼운 목재 미닫이문을 열었더니 왁자지껄 한 말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안개 같은, 불판에서 오르는 고기 익는 연기 사이로 W 내외가 손을 번쩍 들어 나와 아내를 반겼다

 

-너무 오랜만이에요, 우리 E님(나는 W의 아내를 그렇게 부른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럭저럭 지냈죠 뭐, 올해 넘기기 전에 Hoon 씨 부 부랑 같이 저녁 먹고 싶어서 W씨(그녀는 남편을 그렇게 부른다)한테 얼른 연락해 보라고 했어요. J(그녀 는 나의 아내를 그렇게 부른다) 씨도 잘 있었죠?

-아주 잘하셨어요. 아니었으면 이 녀석 내세에서나 전화했을 놈이에요. 자자, 앉으시고 아직 술 안 시키셨네. 첫 잔은 늘 그렇듯 제가 소맥 폭탄주로 만들어 올리겠습니다! 아, 그전에 이것부터 한 포씩 드시고! (우리 부부는 음주 전에 숙취 해소제를 먹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소맥 폭탄주가 몇 순배 돌고 자연스럽게 근황 토크가 이어진다. 내 사정부터 풀어놓는다. "실은 나 내년에 박사 진학하게 됐어. 경영학 석사는 있었고 모교에서 언론학 석사도 공부하고 있었는데 기왕에 하는 거 끝까지 해보자 싶었어." W와 그의 아내가 좋은 소식이라고 반색했다. 너다운 결정이다, 너랑 딱 어울린다, 너는 잘할거다, 격려와 응원이 폭죽처럼 터졌다. "다 이 사람 덕분이지 뭐, 비싼 학비도 그렇고 앞으로 몇 년은 더 어쩔 수 없이 가정에 소홀하게 될 텐데 아내가 어려운 결정을 해주었어." 나의 진심이 그렇거니와 당연하게 모든 공로를 아내의 것으로 돌렸다.

 

  두 부부간 대화가 이렇게만 흐르면 그건 나와 내 죽마고우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각자 가정에 일어 난 좋고 근사한 일만 나누면 어느 극작품의 클리셰처럼 서로 허영심 그득하게 젠체하다 끝나는 씁쓸한 저녁 식사가 되고 만다. 내가 말을 이었다. "얘기가 이렇게만 끝나면 비싼 돈 들여서 가방끈 늘리는 프로젝트 에 불과하잖아. 그렇게 된 배경이 있었는데 말이지, 지난해 연말에 회사에서 인사 발령을 받았는데 이들이 나를 현업에서 빼고 말단 지원부서로 보내더라고. 그것 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이 했는데 불현듯 학교 공부를 더 파봐야겠다 싶더라고. 일종의 보상심리 같은 것일 수도 있겠어.“

 

  그때 W의 아내 E 씨가 말을 받았다. "어이쿠, 마침 이 사람도 올초에 인사이동이 있었는데 그동안 하던 일이랑 완전히 다르고 ‘2선 후퇴'하라는 식이어서 무척 힘들어했었어요." W가 직접 말한다. "내가 오죽하면 휴직계를 다 냈겠냐. 게다가 마침 아버지 병세도 심해지셨어. 몇 달 쉬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 E씨가 혼자 고생 많으셨지. 나 복직해서 정신 차린 지 얼마 안 됐어. 그러고 있느라 Hoon이 너한테 제대로 전화도 못 했었다." J, 나의 아내도 한 마디 보탰다. "두 분 친구 아니랄까 봐, 이 무슨 운명의 평행이론이래요. 저희 아버님도 얼마 전에 큰 병 치르셨거든요. 두 분이 꼭 닮은 힘든 시간 보내셨네!"

 

  W와 나는 벌떡 일어나 서로 부둥켜안았다가, 앉아 서도 손을 맞잡았다가, 두 아내들이 권하는 술잔에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식은 술을 털어 마셨다. 취기가 5%만 더 올랐어도 나는 하마터면 다른 젊은 손님들 사이에서 칠칠치 못하게 눈물 흘리는 흉한 중년 아저씨가 될 뻔하였다. 내가 태어나 알게 된 이 중에 가장 정신력 강한 사내가 바로 내 친구 W인데, 그런 그가 출근을 못할 정도였다면 그 마음의 고통이 가볍게 넘을 것이 아니었단 가장 확실한 증명이다.

 

  "우리 나이쯤에 다 겪는 일인가 보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짧은 문장이었다. W와 나, 우리가 격조했던 것에 엇비슷한 인생 국면을 맞이한 까닭이 있었고 그것이 우리의 우정을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더 튼튼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듯했다. 무언가 더 공유하고 싶어서 내가 에피소드 하나를 짧게 보탰다. "W야, 나 결혼식 때 주례 서주셨던 대학 은사님을 올해 벽두에 힘들어하다 찾아갔는데 말이다,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우리 나이쯤에 돈, 건강, 이성 그러니까 일과 직업, 질병, 부부 사이나 이성 관계 중에 적어도 하나는 목에 칼을 겨누듯 문제가 생긴다시더라. 그러면서 Hoon이 네가 볼 때 안락해 보이는 학교 담장 안에 있다고 선생인 나한테는 네 나이쯤 그런 일이 아주 없었을 것 같니? 물으시는데 그 말씀만으로 큰 위로가 되더라."

 

  일본식 선술집으로 옮겨 부족한 취기를 채우고 막차 시간이 되기 전에 W 내외와 헤어졌다. 너무너무 즐거웠다고, 지난 일 년 애 많이 썼다고, 위태로운 남편들 보살피느라 위대한 안주인들께서 고생하셨다고, 이제 이렇게 오래 못 보지 말고 내년 이삼 월 계절 바뀔 때쯤 꼭 다시 만나자며 인사했다. 모처럼 마음 넉넉한 귀가 길이었다. 그것도 아내와 함께. 같은 감정을 공유했기 때문에. W와 처음 만난 고등학교 교실 이 떠올랐고 교복이며 상고머리, 운동장과 점심시간도 생각났다. W와 나의 절묘한 생의 평행이론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차분한 마음으로 오래 지켜볼 셈이다.

 

 


by.Hoon https://brunch.co.kr/@hoonlee1021/235
(위 글은 작가님께서 행복한가에 기부해주신 소중한 글입니다. 행복한가 이 외의 공간에 무단 복제 및 도용하는 행위를 금지하며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