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밭 새벽편지(행복한 家)

[문화생활정보]전 재산 나누고 떠난 김밥 할머니의 마지막 말

권영구 2025. 1. 23. 09:30

1929년, 일제강점기 시절에 태어난 박춘자 할머니는 줄곧 홀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자라왔습니다. 그 옛날 10살 무렵부터 할머니는 눈이오나 비가 오나 경성역에 자리를 펴고 열차가 들어오는 시간이면 늘어선 승객들에게 새벽부터 말아온 김밥을 팔았습니다. 김밥을 팔면서도 순찰을 도는 일본 순사들을 피해 숨어야 했고, 혼자 장사하던 젊은 시절 할머니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성들을 갖은 욕으로 내쫓아가며 10년 동안 고집스럽게 돈을 모았습니다.

추위와 더위와 위험을 무릅쓰고 힘들게 모은 돈을 자신을 위해 써도 좋았을 것을... 할머니는 10년 간 모은 돈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남김없이 나눠주었습니다.

 

 

"내가 힘들어서 울기도 하고 참 고생 무진장하며 살았는데... 돈이 많아도 내가 쓰면 안 돼.

내가 그동안 돈 없어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불쌍한 사람 줘야지.“

 

그 후 남한산성 길목에서 등산객들에게 매일 김밥을 팔아온 할머니는 2008년, 자신처럼 가난해서 공부를 그만두어야 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모은 돈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마흔 무렵에는 지적장애인 11명을 직접 집으로 데려와 친자식처럼 돌보기도 했을 정도로 기부 뿐만 아니라 사랑과 마음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셨는데요. 또 2011년에는 해외에 있는 빈곤에 처한 어린이들을 돕고 싶다며 국내 뿐 아니라 외국으로까지 기부를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할머니는 죽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이웃들과 나누고 싶다며 꾸준히 기부를 해오셨습니다. 매달 정기적인 기부와 함께 40여 년간 장애인 봉사활동도 꾸준히 지속하셨는데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기부를 지속하던 할머니는 2019년 여름 즈음 서서히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죽게 되면 살고 있는 월세 집의 보증금 5000만원도 모두 기부하고 싶다는 간절한 뜻을 가지기 시작. 할머니의 따뜻하고 뭉클한 기부 소식이 널리 알려지면서 2021년에는 할머니의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받기도 하셨고, 청와대에서 열린 기부 나눔 단체 행사에 초청받아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신 할머니의 사연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할머니는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일본 순사들을 피해 김밥을 팔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렇게 번 돈으로 맛있는 걸 사 먹을 수 있었고, 그게 너무 행복해서 남한테도 주고 싶었다는 진심어린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주면 내가 느꼈던 행복을 줄 수 있었어요.

나누는 일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었어요.”

 

 

지난 3월, ‘남한산성 김밥 할머니’로 알려진 기부 천사 고 박춘자 할머니는 할머니의 뜻대로 평생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박춘자 할머니의 마지막 유언은 자신의 남은 월세 보증금까지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부하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사망 보험금을 포함한 유산과 월세 보증금 모두 어려운 이웃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나누는 방법을 알게 됨에 있었다’는 할머니의 생전의 말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여전히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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