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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연애도 문자로 합니다...통화기피 세대

권영구 2013. 11. 13. 10:11

 

일도 연애도 문자로 합니다, 전화는 무섭거든요

입력 : 2013.11.12 05:00

[컬처 줌 인]...[新인류, 통화기피 세대]

"굳이 전화 안해도 소통한다" 문자·메신저 쓰며 자란 세대
통화하거나 만나는 일 꺼려… 사랑고백·이별도 문자 통보
통화량 많은 직업 피하기도 "소통 방식 가르칠 필요 있어"

얼마 전까지 케이블 TV 예능프로그램 막내 방송작가로 일했던 A(26)씨는 "전화 거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직장을 그만뒀다고 했다. 전화 때문이라니? "직업상 전화를 직접 걸어 얘기해야 할 때가 잦은데, 그게 여간 힘들지가 않아요. 요즘 제 또래 친구나 동료는 대개 문자 메시지로 소통하거든요. 카카오톡이나 SNS 쪽지도 많이 활용하고요. 그러다 보니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야기를 하는 게 참 괴롭더라고요."

자립형 사립고 영어교사 B(33)씨도 비슷한 말을 한다. 그는 "최근 1년 사이 학생들과 전화로 통화해 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요즘 애들은 모르는 문제가 있거나 상담할 얘기가 있을 때도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말을 걸어요. '전화를 하지 그러니' 하면, '전화는 싫어요. 문자로 그냥 답 주세요' 하곤 하죠."

전화를 멀리하고 문자로만 소통하려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특히 요즘 10~20대 사이에선 전화를 아예 기피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2월 국내 한 포털 사이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만 보낸다'는 사람(4240명)이 '전화만 한다'는 사람(1028명)보다 4배 이상 많았다. 응답자의 절반은 10~20대였다.

기사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처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작년 미국 휴대전화 소지자의 31%는 전화 통화보다 문자메시지를 선호했다. 특히 18~24세 이용자는 문자 메시지를 더 편하게 여겼고, 하루 평균 109.5건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영국 방송통신규제위원회가 작년 7월 발표한 보고서를 봐도 영국인의 음성 전화 통화 시간은 2010년에 비해 5% 감소했지만, 문자 메시지 횟수는 4년 전보다 4배 증가했다. 이른바 '전화 멀미증'을 넘어 '통화 기피 세대'의 출현이다.

"전화보단 문자"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C(42)씨는 최근 함께 책을 만들기로 한 20대 파워블로거에게 오후 9시쯤 전화를 걸었다가 면박을 당했다고 했다. "'대체 무슨 급한 일이기에 이 시간에 전화를 거시느냐. 문자로 하시면 되는 것 아니었느냐'라고 하더라고요."

젊은 세대들이 갈수록 육성 통화·대면 대화를 어려워하는 이유를 두고 전문가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나누는 소통에 더 익숙해진 결과"라고 진단한다. 고려대 사회학과 이명진 교수는 "요즘 학교에선 그룹 수업이나 팀 프로젝트를 할 때조차 학생들끼리 한 번도 만나지 않고 메신저나 SNS 메시지로만 의사소통해서 과제를 제출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했다. "굳이 통화하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다고 믿게 됐고, 그 과정에서 대면 만남이나 전화는 점점 더 밀려나게 된다. '가상의 소통'이 '현실의 소통'을 밀어내게 된 셈이다."

'사귀자'도 문자로…소통 교육 필요해

'사귀자' '헤어지자' 같은 고백도 문자·SNS 쪽지로 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몇몇 인터넷 방송에선 아예 이런 고백을 카카오톡이나 문자 메시지로 대신 전달해주는 소위 '대리 고백 서비스'까지 시작했다. 일부 개인 인터넷 방송국에 '○○와 헤어지고 싶다'는 식의 사연을 보내면, 방송 진행자가 그 당사자에게 카카오톡으로 '○○님에게 가슴 아픈 이별의 말을 대신 전한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준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이건호 교수는 "통신 기술만 급속하게 발달하고, 그 기술을 활용한 소통 방법은 누구도 알려주지도, 배우지도 못해 생기는 문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 몇몇 학교에선 최근 사람과 직접 만나 이야기하거나 전화로 의견을 묻는 법을 가르치는 수업도 한다고 한다. 우리도 청소년기 때부터 매체를 제대로 활용하고, 제대로 소통하는 법을 가르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송혜진
대중문화부 기자
E-mail : enavel@chosun.com
조선일보 대중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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