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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 현장] 일본의 아침 7시, 노인들은 출근을 준비한다

권영구 2013. 10. 23. 10:03

[글로벌 경제 현장] 일본의 아침 7시, 노인들은 출근을 준비한다

조선비즈 | 도쿄 | 2013-10-23 03:02:42

 

일본 도쿄에서 서쪽으로 300㎞ 남짓 떨어진 기후(岐阜)현에 사는 스즈키(61)씨. 그는 매일 아침 8시 출근길에 나선다.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올해로 30년째 용접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그를 '맏형'이라 부른다. 젊은 용접공이나 파트 타이머들은 작업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그를 찾는다.

↑ 도쿄=안준용 특파원

 

스즈키씨는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도 "반평생 입어온 이 하늘색 작업복이 여전히 가장 편하고 좋다"고 했다. 2년 전 그는 정년(60세)을 앞두고 선택 기로에 섰다. 종전의 80% 수준 임금만 받고 시니어 사원으로 재입사할지, 퇴직할지를 묻는 회사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돈은 괜찮습니다. 다만 이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한다면 많이 허전하고 서운할 것 같아요."

이 공장 전체 사원 106명 가운데 15명은 스즈키씨처럼 정년 이후 일을 택한 사람이다. 회사 측은 "시니어 사원들은 오랜 기간 일하면서 기술을 습득한 데다 리더십까지 갖추고 있다"며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에 큰 기여를 하는 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떠나보내고 싶진 않다"고 했다.

이처럼 일본 기업에서 60세 이상 직원들을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일본 정부가 올 4월부터 기업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고령자 고용 안정법'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60세 정년퇴직 이후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는 직원은 기업이 노사 합의 등을 통해 선별적으로 재고용을 해왔다. 하지만 개정법에 따라 이제는 정년에 이른 근로자 가운데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65세까지 정규직 또는 계약직, 어떤 형태로든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

일본 경제학자들은 "고령자 고용은 저출산 고령화에 직면한 일본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은 국제연합(UN)이 정한 초고령 사회 기준인 고령화율(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 20%를 이미 2005년에 넘어섰고, 작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3000만명을 돌파했다. 노동력이 부족해지는 반면 연금 지급 대상자(60세 이상)는 늘어나는 난국에 처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타개하고자 2025년까지 연금 지급 연령을 65세로 올리고, 그에 따른 '소득 공백'을 막기 위해 기업의 고용 연장을 의무화했다.

당장 인건비 부담은 늘어날 수 있지만, 핵심 기술과 경험을 갖춘 숙련 고령자 고용은 결국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 내수 활성화의 원동력이 된다는 점에 많은 기업이 동의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최근 더 많은 고령자를 채용하기 위해 고용·임금체계를 개편하고 있다. 중공업 기업인 IHI사에서는 60세가 된 직원들이 자기 정년을 60∼65세 범위에서 스스로 정한다. '재입사'가 아닌 '정년 연장'이라 자신이 선택한 정년까지 정규직 풀타임 근무가 보장된다. 산토리홀딩스, 다이와하우스공업 등은 아예 전 직원의 정년을 65세로 늘렸다. 미쓰비시중공업은 과거 60세 이상 직원을 재고용할 때 임금을 40% 삭감하고 1년마다 계약을 갱신했지만, 이제는 재고용 시 과거 업무와 역할을 임금에 반영키로 했다. 철강회사 JFE는 정년 연장 근로자 가운데 핵심 숙련공에게는 월급을 종전보다 월 3만5000엔씩 올려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 기업의 이런 '고령자 고용 시스템'은 정부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본 정부는 1980년대 초부터 기업의 고령자 고용을 장려해왔다. 1986년 고령자 고용 안정법을 처음 만들었고, 이번 법 개정에 앞서서도 사회 공감대 형성을 위해 수년간 기업·학계와 논의하며 정년 연장 캠페인을 벌여왔다. 정부는 60세 이상 고령자 고용 기업에 규모에 따라 창업 지원금이나 보조금을 지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