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답하려 하루 날린 기업인들
"한성인베스트먼트와 자동차는 같은 회사인가""관계 없다" … 국감장 문답은 그것으로 끝
중앙일보 이소아 입력 2013.10.16 01:39 수정 2013.10.16 06:13
국정감사 이틀째인 15일 국회엔 손영철 아모레퍼시픽 사장, 백남육 삼성전자 부사장, 최주식 LG유플러스 부사장, 박기홍 포스코 사장, 김충호 현대자동차 대표, 배중호 국순당 대표 등 민간 기업인들이 가슴에 '방문'이라고 적힌 표찰을 달고 나타났다. 국회 정무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위원회·환경노동위원회 등에서 기업인을 줄줄이 증인으로 채택해 이날만 40여 명이 국회에 불려나왔다.
국회 본청 6층의 정무위 국감장엔 재계 인사 19명이 증인석에 앉았다. 수입차 업계의 부품가격 담합과 관련된 질의가 진행되던 중이었다.
▶민병두(민주당) 의원="(한성인베스트먼트와 한성자동차) 두 회사는 같은 회사 아닌가."
▶임준성 한성인베스트먼트 대표="(계열사이긴 해도) 저희는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회사이고 자동차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민 의원은 주제를 돌렸다. 임 대표에 대한 질문은 그걸로 끝이었다. 다른 의원들도 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증인석에서 3시간 정도 앉아 있다 돌아간 임 대표가 나와서 한 말은 '우리 회사는 자동차 판매업과 관계 없다'는 한마디였다.
비슷한 시간 한 층 아래인 5층의 산업통상자원위 국감장.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점령이 논란거리였다.
▶이강후(새누리당) 의원="이마트가 변종 SSM(기업형 수퍼마켓) 사업을 선도하고 있지 않는가. "
▶허인철 이마트 대표="제가 맡은 회사는 SSM이 아니라 3000평 이상 대형 매장이다."
▶강창일 위원장="답변할 상황이 아니라는 건가. 그러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을 불러야 한다."
▶이진복(새누리당) 의원="증인 말대로라면 부회장을 불러야 한다."
▶오영식(민주당) 의원="부회장을 불러 증인으로 채택하자."
계열사 대표가 "내 분야가 아니다"라고 답변한 데 발끈한 산업통상자원위는 즉석에서 정 부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증인 채택에 걸린 시간은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날 정무위 국감장에선 경영인들을 상대로 하청업체와의 '갑을 관계'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일감 몰아주기, 대리점 납품단가 인하와 폭언 등 각종 현안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문답시간의 대부분은 의원들의 질문이 차지했고 기업인들은 '네' '충분히 알겠습니다'는 말만 반복했다. 답변시간은 1인당 1분도 되지 않았다. 롯데피에스넷 이정호 대표의 경우 오후 1시부터 정무위 국감장에서 대기하다 약 30초 답변하고 오후 3시30분쯤 돌아갔다. 이 대표를 증인으로 신청한 새누리당 안덕수 의원은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는 "이런 데 증인으로 나와서 회사를 바르게 홍보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무위에선 외국인인 브리타 제거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대표 등 외국계 기업의 증인을 위해 통역사까지 동원됐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증인을 불러놓고 김정훈 위원장은 "시간적 제한도 있고 하니 총괄적으로 질의하고 총괄적으로 답변하고 끝낼게요"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번 국감에 채택된 기업인 증인은 역대 최다인 약 200명이다. '일단 불러놓고 보자는 식'의 증인 채택에 의한 수치다. 그 결과는 엉뚱한 문답이나 무더기 증인 출석에 따른 부실한 질의응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날 4시간째 대기하던 국순당 배중호 대표는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이미 공정위에서 시정명령 요구를 받은 대로 조치를 취했는데 왜 국감 대상이 됐는지 납득이 안 간다"고 말했다. 이경율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공동단장도 "백화점 식으로 증인을 부르기보다 반드시 나올 한두 명을 불러 집중적으로 질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글=이소아·김경희 기자 < lsajoongang.co.kr >
사진=김형수 기자
사진설명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정재희 수입자동차협회장, 김효준 BMW코리아 대표, 통역사, 브리타 제거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대표(서 있는 사람 왼쪽부터) 등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 정대표 한국소비자원장, 김순종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 둘째 줄 오른쪽부터 김영찬 골프존 대표, 김충호 현대자동차 대표, 박기홍 포스코 사장, 박재구 CU 대표. [김형수 기자]
이소아.김경희.김형수 기자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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