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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대통령을 무릎 꿇게…

권영구 2011. 3. 5. 10:24

"어떻게 대통령을 무릎 꿇게…" 속 끓는 청와대

  • 입력 : 2011.03.05 03:00

목사가 '통성 기도' 돌발 제안… 사전협의 없이 일 벌어져
'의전팀은 뭐했나' 지적에 "불가항력이었다" 해명

대통령이 특정 종교 행사에서 무릎을 꿇는 사건이 벌어진 다음날 청와대 관계자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다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인 길자연 목사가 "무릎 꿇고 통성(通聲)기도를 하자"는 바람에 약 3분 동안 공개적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4일 "대통령 의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국가원수를 사전에 아무런 상의도 없이 그런 지경으로 만든 것에 대해 청와대 대부분이 어이없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독교계로부터 이 일에 대해 누구도 책임있게 '잘못됐다'거나 '유감이다'는 연락조차 없었다"며 "너무한 것 아니냐"고 하기도 했다.

지난 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길자연 한기총 대표회장이 손을 들고 ‘통성 기도’를 하고 있다. 길 회장이 이 자리에서“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한 죄의 고백을 하자”고 제안하자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그러나 개신교계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길 목사는 자주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자고 하는 사람인데 청와대에서 사전에 그런 것도 체크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청와대는 "국가조찬기도회는 대통령이 매년 참석하는 행사이고 이번에도 충분한 사전 협의가 이뤄졌다"며 "사회자의 진행 멘트와 기도문안까지도 사전에 검토했지만 길 목사가 그렇게 돌발적으로 제안한 것은 불가항력적인 사건이었다"고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가 만약 종교계 행사에 대해 무슨 말을 할지, 목사님이 어떤 행동을 할지까지 다 사전에 보고하라고 했다면 '청와대가 간섭하고 압력을 넣는다'고 했을 것"이라며 "이번에도 경호나 의전 때문에 행사 계획을 분·초 단위로 검토했지만 목사의 기본 양식을 의심하는 수준의 준비까지는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세계 각국은 대통령 행사 하나하나를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사전에 준비하고 점검한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상황도 생긴다. 작년 10월 청와대를 방문했던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팀 선수들은 한 아이돌 그룹이 공연하던 무대로 갑자기 뛰어올라갔다. 시나리오에 없던 일이었다. 경호원들은 긴장했다. 또 재래시장 방문 때도 행인과 상인들이 뛰어들거나 손을 뻗고, 사진을 찍자고 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달에는 김선택 납세자연맹회장이 공정사회추진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6분간 쓴소리를 쏟아낸 적도 있다. 발언자도 정해져 있었고 시간도 가능하면 "3분 이내로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예정에 없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의전 관계자는 "아무리 사전 준비를 해도 결국에는 주최측이나 참석자의 '양식(良識)'을 믿고 맡겨야 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 통성(通聲) 기도

하나의 제목을 가지고 모든 신자가 한꺼번에 밖으로 소리를 내서 하는 기도 형태. 합심기도라고도 한다. 대한제국 말기 개신교가 양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는 계기가 됐던 1907년 ‘교회 대부흥 운동’ 당시 대형 집회에서 땅을 치고 울며 자기 죄를 큰 소리로 고백하는 형태의 기도가 시작됐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일반적으로 한국 교회만의 고유한 기도 형태인 것으로 본다.